폰테크 정청래, 여성 기초단체장 30명은 돼야 한다더니…결국 17명뿐? 공천 현실은 ‘유리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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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2016년 강남역 10번 출구 여성 살해 사건이 발생한 지 10년이 된 해다. 지난 10년간 여성들은 거리로 나와 성평등 사회를 외쳤고, 12·3 비상계엄 후 탄핵광장에 적극 참여하며 사회대개혁을 요구했다. 그런데 왜 구체적인 선거, 현실 정치에서 여성의 입지는 여전히 협소할까. 지역에서 정치인으로 활동했거나 이번 선거 출마에 도전한 여성 정치인들은 정당이 여성 정치인을 확대할 의지가 크지 않고 남성 중심적인 문화가 정치권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비후보자에서부터 여성의 수가 남성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다. 4월 22일 기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한 기초단체장(구·시·군의 장) 예비후보자 명부를 분석해보면 여성은 81명으로 전체 예비후보자의 7.6%다. 남성은 982명에 달한다. 11개 기초단체장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충북지역은 남성이 56명 예비후보자로 등록할 때 여성은 단 1명(하유정 보은군수 후보)만이 등록해 전국에서 여성 기초단체장 예비후보자의 수가 가장 적었다. 여성 예비후보자의 비율로 따져보면 충남(2.8%), 강원(3.7%), 경남(4.0%), 전북(4.4%)이 하위권이었다. 부산이 16.6%로 가장 비율이 높았고, 대부분의 광역시는 10%대에 그쳤다.
광역의원의 경우 여성 예비후보자 수가 454명으로 전체(2015명)의 22.5%였다. 경북이 10.0%로 가장 여성 비율이 낮았다. 세종(35.0%), 서울(30.6%), 대전(30.1%)만 30%를 넘겼다. 기초의원의 경우 여성 예비후보자 수는 1303명으로 전체(5024명)의 25.9%였다. 예비후보자부터 여성이 적다는 것은 그만큼 여성의 정치 참여가 활발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천에 있어서 특별한 조치가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공직선거법 제47조는 정당이 지방의원 후보자를 추천할 때 전체의 30%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하도록 노력하고, 광역의원 또는 기초의원 선거 중 하나에서 선거구마다 1명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민주당은 당헌·당규에 후보자 추천 때 여성을 30% 이상 포함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민주당 공천이 확정된 곳을 살펴보면, 광역단체장의 경우 추미애 후보를 뺀 나머지 15명은 모두 남성으로 배치됐다. 기초단체장 후보는 공천 확정된 200명 중 여성이 17명이다. 부산에서 전체 기초단체장 후보 16명 중 여성을 6명 공천한 게 가장 눈에 띈다. 민주당이 강세인 광주에서는 신수정 북구청장 후보가 광주 최초의 여성 구청장에, 경북에선 40대 여성인 김기현 후보가 경산시장에 도전한다. 하지만 서울은 기초단체장 후보 22명 중 여성이 1명(김미경 은평구청장 후보), 경기는 31명 중 여성이 2명(김보라 안성시장 후보·박은미 양평군수 후보)뿐이었다. 대전, 대구, 울산, 강원, 충남, 전북, 전남은 민주당의 여성 기초단체장 후보가 0명이었다.
국민의힘은 아직 공천이 확정되지 않은 곳이 많아 추산하기는 어렵다. 국민의힘에서도 엄윤순 인제군수 후보 등 지역의 첫 여성 기초단체장에 도전하는 후보들이 있지만, 여성 공천 30%를 달성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전망이 나온다. 거대 양당과 달리 진보당 서울시당은 지난 4월 11일 출마 기자회견에서 “후보 52명의 평균 연령은 41.3세, 여성 후보 비율이 57.6%, 20~30대 후보 비율은 44.2%로 가장 역동적인 후보군”이라고 밝혔다. 광역단체장으로 보면 진보당에선 전희영 후보가 경남도지사, 정의당에선 강은미 후보가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선거에 나섰다.
가장 큰 문제점은 미흡한 제도 속 정당의 ‘의지 없음’이 꼽힌다. 공직선거법의 여성 추천 규정은 ‘노력해야 한다’고 돼 있고, 민주당의 당헌·당규의 여성 추천 규정에도 ‘단체장은 여성을 30% 이상 포함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다. 의무가 아니고 권고 수준이다. 또 광역의원 ‘또는’ 기초의원 중 여성을 공천해야 한다고 돼 있어 기초의원으로의 여성 쏠림 문제도 있다. 지난 3월 경남여성단체연합이 ‘당선 가능 지역에 대한 성평등 실현 전략이 무엇이냐’고 질의하자 민주당 경남도당은 “기초의원 선거구의 경우 3선 이상 후보자는 1-가번을 배제하고, 배제된 선거구에는 여성, 청년이 우선 공천될 수 있도록 전략 선거구로 지정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광역의원은 언급하지 않았다. 윤소영 경남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광역에 여성 선출직이 없어서 시급한 문제인데 30% 할당제를 기초에서 채운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30% 할당제 뒤에 숨지 말고 실질적인 조치를 하라고 요구했지만 그런 부분에 대한 답변은 없다”고 했다. 2022년 지방선거 결과에서도 당선인 중 여성 비율이 광역단체장 0%, 기초단체장 3.0%, 광역의원 14.7%, 기초의원 24.9%로 기초의원에서 가장 높았다. 활동 범위가 좁고 권한이 작은 기초의원에서만 여성들의 참여가 ‘허용’된 셈이다.
지방의원 공천에 지역구 국회의원(지역위원장) 입김이 강한 체제 속에서 정당이나 해당 지역위원장이 특별히 여성 공천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지 않은 이상 여성들이 배제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성 후보들이 경선에 참여하지 못하고 컷오프된 지역에서 그런 문제가 제기됐다. 대표적으로 부산에서 국민의힘 기초단체장 여성 후보 2명이 컷오프됐다. 유순희 부산 동구청장 후보는 “장동혁 당대표가 여성과 청년이 마음껏 뜻을 펼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겠다고 선포했는데 지역에선 거꾸로 가고 있다”며 “지역구 국회의원이 공천권을 쥐고 마지막 결정을 한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고, ‘내 지역에서 내가 왜 여성(정치인)을 만들어야 하느냐’라며 책임감 없이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유 후보는 “이런 공천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이상 한국에서 여성과 청년 등 정치 신인이 정치 허들을 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했다. 여수에서 컷오프된 여성 후보 2명 중 1명인 정현주 여수시의원(민주당)도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줄을 서고 충성하지 않으면 정치 활동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 많이 발생한다”며 “의정 활동을 잘했는데도 여성 정치인을 배제하는 것은 여성 정치인 비율을 높이겠다는 중앙당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했다.
민주당이 공천 헌금 의혹 후 공정한 공천, 원칙적 경선을 강조하면서 오히려 여성 공천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기초단체장 여성 후보가 1명뿐이고 광역의원 예비후보자 중 여성 비율이 20.6%로 낮은 충북의 손은성 충북참여연대 공동대표는 “민주당이 여성 공천을 많이 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지만 무조건 경선을 원칙으로 하다 보니 정치 신인이나 청년, 여성, 장애인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1순위 공천을 하는 그런 룰이 실종됐다”며 “정치 신인인 청년 여성이 기존의 남성과 경선을 붙게 되면 가산점을 일부 부여받아도 경쟁이 안 된다. 그 결과가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다.
돈과 시간, 경력 등 사회자본이 풍부해야 정치 참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에서의 성비 불균형은 사회 전체의 성별 불평등을 반영한다. 한 전직 시의원은 “정치를 하려면 사회적 경력이 중요한데 여전히 여성들의 사회적 경력이 남성에 비해 부족하다”며 “남성들은 이미 어느 정도 자기들의 영역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여성들의 진출이 힘들고, 혹여 경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정치 문화, 풍토 탓에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은 능력을 요구받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미투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성평등과 관련한 의정활동을 하면서 당내에서 공격을 받고 관계가 어려워졌다”며 “낙인이 찍혀 자유롭게 활동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다른 시의원은 “여성이 남성 정치인과 어울리면 이상하게 보거나 구설에 오른다”며 “그래서 술자리 같은 사적 모임에 가지 않으면 또 긴밀한 관계를 갖는 것에 어려움이 생긴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남성 네트워크에 적극적으로 편입하거나 성평등, 여성의제에 소극적인 대신 남성 정치인들처럼 개발·성장 공약을 강조하는 여성 정치인도 있다고 한다.
임신·출산·육아 부담은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를 막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출산 후 10일 만에 산후조리원에서 토론회에 참여해 여성 공천 시스템에 대해 발제하고, 21일 만에 곧바로 의정활동에 복귀했던 엄샛별 서울 금천구의원은 고민 끝에 이번 지방선거 출마를 포기했다. 지난 4년간 의정활동을 하면서 엄마 역할을 하지 못한 부담감과 죄책감이 컸기 때문이다. 불가피할 땐 양해를 구하고 상임위 자리에 아이를 데려가거나 아이를 안은 채 일정을 수행한 적도 있었지만 더 이상은 어렵다는 판단을 했다. 엄 의원은 “직업과 엄마를 병행한다는 건 수많은 워킹맘이 갖는 딜레마”라며 “특히 정치 영역은 엄마를 병행할 수 없다. 주말과 저녁이 없고, 아이에게 시간을 일정하게 빼줄 수 있는 것도 아니라 가족들이 계속 이해를 해주고 있었는데 4년을 더 하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엄 의원은 이어 “가정이 이미 만들어져 있고 육아가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에선 정치 참여가 가능하겠지만 그걸 해나가야 하는 청년 시기엔 특히 어렵다”며 “여성 의원들이 활발하게 의정활동을 해왔지만, 생애주기와 성별에 따른 과업이 있다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창원시의원에 출마한 35세 여성 김인애 후보(진보당)는 “제 나이에 정치를 하려면 솔로가 아니면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청년 여성이 정치를 하려면 경제적 기반이 있어야 하고, 가정이 있다면 가정에서 이해를 해줘야 한다”며 “저는 정혜경 국회의원실 비서관을 했고 남편도 활동가라서 (선거 출마가) 가능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정말 특수한 일일 것”이라고 했다. 청년 여성 정치인에 대한 시선도 녹록지 않다. ‘젊으니까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 ‘정말 당선되려고 나왔나’ 같은 반응을 접하게 된다는 것이다. 계엄 후 창원시 탄핵광장 사회를 맡았던 김 후보는 “(탄핵광장 후) 여성 정치인이 많이 나올 것이고, 청년 여성들이 정치의 주역이 될 것이라는 말이 많이 나왔지만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며 “정치가 2030 여성에 관심이 있는지, 2030 여성에게 자기의 목소리를 전달할 의지가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단순히 여성 정치인의 수 확보를 넘어 어떻게 좋은 여성 정치인을 만들지는 과제다. 현재 선출직 여성 도의원이 없는 경남에서 경선을 이기고 민주당 후보로 이번 선거에 출마하는 김경영 후보는 여성 정치인 확대를 위해 보다 정밀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후보는 “요즘 유권자들은 여성인지 아닌지에 대해 큰 차이를 두지는 않는다. 일을 잘할 수 있고 주민들과 잘 소통하는 것에 점수를 많이 준다”며 “여성에 대한 편견은 많이 줄어든 것인데, 그렇다면 좋은 여성 정치인이 하루아침에 길러질 수는 없기 때문에 3~4년 정도 주민들과 호흡하고 신뢰를 쌓는 시간이 미리부터 필요하다”고 했다. 김 후보는 “할당하고 가점을 주는 상태에서는 여성의 역량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며 “여성이 더 필요하다, 뽑아주자고 하기까지 여성들이 결국 숙제를 안고 가야 하는 구조”라고 했다.
윤소영 대표는 “(경남지역에서) 국민의힘이 민주당보다 여성 후보를 더 많이 냈는데 반갑지 않았던 이유가 김영선 국회의원(공천거래 의혹)과 김미나 창원시의원(막말 논란)이 있었다”며 “여성 의원이 나왔지만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것을 보면서 생물학적 여성으로만 만족할 수 없게 됐다”고 했다. 윤 대표는 “올바른 민주주의 실천 의지가 있는지, 성평등을 제대로 인식하는지에 대한 검증을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추미애 후보가 당선돼 헌정사상 첫 여성 광역단체장이 탄생한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페미니즘 정치, 성평등 사회 실현을 위해선 더 강한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 아이를 처음 만난 건 2003년이었다. 새내기였던 아이는 강의가 끝나면 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는 주로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지, 자기 문장에 문제는 없는지, 매번 소설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마흔이 코앞이었는데도 그때의 나는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법을 알지 못했고, 그래서 다가오는 사람들이 불편했다. 친한 사람에게 먼저 전화해서 안부를 물어본 적도 없었다. 나중에야 깨달았다. 빨갱이의 딸이라는 주홍글씨 때문에 어린 나이부터 나를 드러내지 않는 법을 익혔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제대로 된 관계를 맺을 수는 없는 법이라 관계에 서툰 사람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어떤 상처가 남긴 흔적은 이렇게나 뿌리 깊어 삶 전체를 뒤흔들고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마흔의 나는 그런 결핍이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으므로 당연히 오만했다.
아이는 내가 계속 거리를 두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이건 그때의 내 생각일 뿐이다. 나중에 보니 아이는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제 딴에는 최선을 다해 조심했으리라) 다가왔다. 경계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가까워졌고, 때로 아이는 집 근처로 찾아오기도 했다. 시장 갈 때를 제외하면 집 밖에 잘 나다니지 않던 터라 나는 십 년 가까이 살았으면서도 동네의 식당이나 카페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휴대전화 검색도 되지 않던 시절, 아이는 친구의 친구에게라도 물어 우리 동네의 맛있다는 식당이며 카페를 알아왔다. 처음 가는 곳을 지도도 없이 아이는 척척 찾아갔다. 아마도 나를 만나기 전에 미리 가본 것 같았다. 나를 찾아올 때마다 아이는 뭔가를 들고 왔다. 각종 화장품, 자잘한 소품들. 정확한 품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렇게나 무심한 사람이다. 확실히 기억나는 선물은 발 매트다. 대체 이런 걸 왜 선물로 주는 건지 의아했고, 그래서 기억하는 모양이다. 나중에 들었다. 함께 걷던 중 내가 아 맞다, 발 매트 사야 되는데, 라고 두어 번 말을 했단다. 바빠서 못 사는 줄 알고 아이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발 매트를 사다준 것이다. 바빠서 못 산 건 아니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물건 사는 걸 귀찮아한다. 특히 인테리어용 소품은 절대 사지 않는다. 발 매트가 낡아서 새 걸 사는 게 좋았을 테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니 그냥저냥 지났을 게 분명하다. 아이의 다양한 선물을 받을 때마다 나는 고마워하기는커녕 나는 의아해서 물었다.
도대체 이런 걸 왜 선물하는 거야?
세상에. 마흔 무렵 내가 한 말에 환갑 지난 내가 다 낯이 뜨거웠다.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라면 그런 말을 듣고 다시는 선물 같은 거 해주지 않을 것 같아서. 아니 그런 말을 한 사람을 다시는 보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런 말을 듣고 괜찮았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하하 웃었다.
그러게요. 그런 시절이 있었네요.
그러게요, 라는 한마디에 얼마나 많은 함의가 숨어 있을까. 그때 아이는 고작 스물, 스물하나였다. 아이는 나보다 더 세상에, 사람에 서툴렀을 것이다. 예쁜 소품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당연히 몰랐을 테지. 제 딴에는 내가 생각나서 집어 들었을 그 많은 선물을 나는 고마워하기는커녕 이런 걸 왜 주니? 라는 차가운 말과 함께 냉담하게 받았다. 받지 않느니만 못하게. 그 무렵 아이는 많지 않았을 용돈의 상당한 양을 내게 썼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았을 나이에. 그 돈이, 선물을 고르느라 썼을 그 시간이 나를 향한 아이의 마음이었다.
몇 달 전 아이가 다녀갔다. 일본 여행을 다녀오면서 아이는 나를 위해 많은 것을 사왔다. 이제는 내 취향을 잘 알아서 두부나 미역이 든 즉석 미소 수프와 사케. 그리고 액상 커피 프림. 프림을 보자마자 알았다. 구례 내려온 직후 한 제자가 돌체 구스토 커피 머신을 선물했다. 여기서는 커피 캡슐도, 액상 프림도 구하기 어려워 아이에게 몇 번 부탁한 적이 있었다. 그 기계를 쓰지 않은 지 오래다. 아이도 안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우연히 발견한 액상 프림을 보며 나를 떠올렸을 것이다. 아이가 가고 난 뒤 원두를 내려 오랜만에 액상 프림을 넣어 마셨다. 그래, 내가 이 맛을 좋아했었지. 지나간 것은 잊기 쉽다. 제 취향조차도. 그래도 잊지 않으련다. 발 매트를 사던 아이의 마음을, 그 마음조차 받을 줄 몰랐던 나의 어리석음을.
국토교통부가 이재명 정부 들어 ‘주택정책 주무부처’란 위상이 무색하게 부동산 문제에서 소외된 모양새가 계속되고 있다. 장기적 방향 설정은 고사하고 ‘대통령의 X(SNS) 메시지만 바라본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주택 공급과 주거복지 시각이 아닌 부정거래 단속 등 단기 성과에 초점을 맞추고, 세제 등 정책에 역량을 집중시킨 결과다. 국토부가 주거복지 등 나름의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6일 국토부 안팎의 평가를 종합하면, 주택정책 관련 ‘국토부 소외론’의 배경엔 국토부 스스로 제시하는 장기적 관점의 주택정책이 뚜렷하지 않은 탓이란 지적이 많다.
단적인 예가 ‘주거복지 로드맵의 실종’이다. 주거복지 로드맵은 문재인 정부에서 2017년 ‘청년·신혼·고령가구 집중 지원으로 주거사다리 마련’이란 취지로 시작했다. 이재명 정부 들어서도 1·29 공급 대책 발표 직후 김윤덕 국토부 장관이 직접 3월 주거복지 로드맵을 발표하겠다고 일정을 제시했으나 4월 말인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다.
현재 주택 정책 초점은 국토부가 전통적으로 주력한 ‘공급’보다는 ‘단속’으로 옮겨가면서 국토부의 목소리는 급격히 작아진 모양새다. 이를테면 이재명 정부의 대표 국정과제인 ‘부동산감독원’ 신설과 관련해선 더불어민주당에서 2~3월 발의된 법안 3건 모두 부동산감독원이 국무총리실 산하로 배치돼 있다. 부동산감독원은 ‘부동산판 금융감독원’이라고 불리며, 시세 조작 등 불법행위 조사에 집중하는 기관이다.
특히 지난 23일 더불어민주당 주거복지특별위원회가 주최한 ‘이재명 정부 주거·부동산정책 1년 평가와 향후 과제 - 부동산 정상화, 주거안정의 새로운 길을 묻다’ 토론회에서는 이 같은 지적이 쏟아졌다.
이광수 광수네복덕방 대표는 “이재명 정부에선 부동산 정책이 없었다”며 “(일부 지역 가격 폭등 등) 문제나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만 있었을 뿐”이라고 평가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도 “새 정부가 1년이 다 돼가는 상황에서도 주거 정책 방향을 대통령의 SNS를 통해서 아는 것이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박미선 국토연구원 박사는 “주택을 단순한 경제적 재화가 아닌 ‘사회적 인프라’로 보는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며 “과거 주거복지 로드맵처럼 10~20년 흔들림 없이 이어갈 일관된 정책 방향을 짜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복합적 이유가 있지만 관가에선 이재명 정부 초기부터 누적된 국토부 내 인사 문제가 부처의 입지를 애매하게 만든 요인으로 꼽힌다. 일단, 이상경 전 1차관이 지난해 10월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 발표 직후 ‘갭투자 논란’이 불거지면서 사임했다. 강희업 전 2차관도 임명 5개월 만에 돌연 교체됐다. 정권 출범 1년도 되지 않는 사이 고위 공직자가 연달아 바뀐 것이다.
윤석열 정부 당시 제기된 ‘부동산 통계조작’ 사건이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았다는 점도 국토부 공무원들을 위축시키는 요인 중 하나다. 문재인 정부 당시 국토부 주택부문 공무원들이 ‘부동산 관련 통계를 조작했다’는 혐의로 감사원 징계 권고를 받은 바 있다. 국토부는 지난해 6월 재심을 청구했으나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이로 인해 국토부 내 이른바 ‘주택정책 라인’에 공백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새 정부 들어서도 처리가 지연되면서 대대적 인사가 어렵다는 관측이 나왔다. 국토부 관계자는 “오랫동안 축적된 경험이나 전문지식이 사장되는 측면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국토부의 ‘분위기 전환’이 멀지 않았다는 긍정적 해석도 나온다.
국토부는 지난 24일 부동산 관련 현안에 기민하게 대처하고 중장기 분석을 수행한다는 목적으로 ‘부동산제도기획과’를 신설했다. 자체 대응력 강화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회는 민주당 주도로 통계조작 사건 국정조사를 열고 감사원이 조속히 재심 결과를 낼 것을 강하게 요청했다. 국토부의 공급 대책을 뒷받침할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개혁안을 논의하는 LH개혁위원회도 오는 29일 약 3개월 만에 회의를 재개하고, 공석인 사장 자리도 채워지면 정책 동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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