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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단종 역을 맡은 배우 박지훈(왼쪽)과 엄흥도 역을 맡은 배우 유해진. ‘왕사남’의 차별점은 역사를 단순화했다는 점이다. 스토리텔링이 꽉 차지는 않지만, 영화 줄거리가 평이해 남녀노소가 쉽게 관람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쇼박스 제공]
수양대군(세조)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와 드라마는 많았다. 영화 ‘관상’(2013년)에서는 배우 이정재가 수양대군의 강한 권력에 대한 집착을 잘 보여주었다. KBS 드라마 ‘왕과 비’(1998~ 2000년)는 세조를 선 백경게임랜드 인으로 그렸고, 단종의 충신인 김종서를 별로 좋게 보지 않았다.
KBS ‘공주의 남자’(2011년)는 김영철이 열연한 조선의 마키아벨리 수양대군과 그의 정치적 숙적이었던 김종서의 두 자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뤄 인기를 끌었다. 수양에게 당한 피해자 입장에서는 영화 ‘단종애사’(1963년) 등이 있다.
25일 기준 누적 관객 손오공릴게임 수 1500만명을 돌파한 국민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억울하게 죽은 단종의 이야기다. ‘왕사남’의 차별점은 역사를 단순화했다는 점이다. ‘세조실록’ 9권에는 “노산군이 스스로 목을 매어 죽으니 예로써 장사를 지냈다”고만 돼있다. 거기에 약간의 상상을 입혔다. 그래서인지 스토리텔링이 꽉 차지는 않지만, 영화 줄거리를 이해하기가 쉬워 남녀노소가 관람할 수 있 온라인야마토게임 다.
‘왕사남’은 1457년 삼촌인 수양에 의해 왕위를 찬탈당하고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영월의 청령포로 유배온 어린 선왕 이홍위(박지훈)와 가난한 마을을 부흥시키기 위해 옆마을 여우골 사례를 참고해 유배지를 자처했다가 어린 왕을 돌보는 광천골 촌장 엄흥도(유해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영화 스토리는 매우 단순하 바다이야기APK 다. 압축하면 단종-엄흥도-한명회, 이 세 사람이 삼각형의 꼭지점을 형성하고 있다. 세조 세력은 한명회(유지태) 한 명이 메인 빌런이다. 한명회는 단종, 엄흥도와 불화한다. 단종과 엄흥도는 인간적으로 끌린다. 이게 끝이다.
단종과 엄흥도가 인간적으로 끌리는 과정이 별로 정교하지도 않다. 단종은 광천골 사람들이 만들어준 음식을 맛있게 먹고, 게임몰 또 이 마을 청년들에게 글자를 가르치면서 서로 하나가 된다. 그러다 엄흥도와 함께하는 단종의 최후장면에서는 모두가 울게 된다. 짧은 세월이지만 단종이 엄흥도와 마을사람들을 만나 교감하며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과정이 눈물겹다.
어린 단종이 16세에 죽임 당하는 것의 억울함
어린 왕이 16세에 죽임을 당하는 게 얼마나 억울한가. ‘왕사남’에서는 단종의 이런 억울한 심경이 잘 전달됐다. 단종은 태어났더니 할아버지가 세종대왕이다. 아버지 문종과 단종 본인은 모두 적장자(嫡長子)다. 적장자는 정실부인(正室)에게서 낳은 맏아들을 말한다. 조선시대 27명의 왕 중에서 적장자가 별로 없다.
단종은 왕이 될 수 있는 ‘피’가 가장 진한 ‘순혈’이다.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왕위 승계 순위가 한참 뒤지는 작은 아버지에게 왕위를 뺏기다니. 조선왕릉이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때, 이런 스토리텔링이 담긴 영월의 장릉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영월군에서는 원주시 신림면 황둔리와 영월군 주천면 등을 잇는 단종대왕 유배길, 일명 ‘통곡의 길’ 코스를 정해놓았다. ‘통곡의 길’이란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마음 둘 곳 없어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되돌려야 했던 단종 신하들의 가슴 먹먹했던 고통의 길이다. 임금에게 전할 사약을 손수 들고 가는 신하들이 울고 또 울며 걷던 애달픈 길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극장에서는 관객들이 소리내 울 수 있는 ‘왕사남 울어롱 스페셜 상영 이벤트’, 일명 통곡상영회도 등장했다. 12일과 29일 전국 곳곳의 영화관에서 마련됐다. ‘왕사남’ 배급사인 쇼박스는 관객들이 눈물을 닦을 수 있도록 ‘자수 수건’도 굿즈로 준비했다. 단종을 보면 괜히 미안해진다. 마음껏 통곡하면서 단종을 잊지말고 기억하자!
수양대군은 ‘왕사남’에 안나오지만 ‘슈퍼빌런’
수양은 군사정변인 계유정난(1453년)을 통해 순식간에 실권을 장악했다. ‘정난’이라는 말은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이 어린 손자 건문제에게 제위를 넘기자, 주원장의 아들이자 건문제의 삼촌인 ‘연왕’ 영락제가 3년간 내전을 일으켜 조카의 제위를 찬탈한 ‘정난의 변’(靖難之役)에서 따온 듯하다. 명의 3대 황제가 된 영락제는 수도를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옮겨 새로운 궁성인 자금성을 짓고 항저우와 베이징을 잇는 대운하를 개수했다.
수양은 계유정난때 자신의 편에 선 한명회, 권람, 신숙주, 한확, 정인지 등 정난공신과 권력을 나눴다. 이들 일당은 12.12 군사 쿠데타를 성공시킨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신군부 세력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샴페인을 터뜨렸듯이, 득의양양했다.
수양은 큰아버지이자 세종의 형들인 양녕과 불교에 심취한 효령도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다. 양녕과 효령이 각각 68세와 92세로 천수를 누린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수양은 자신보다 한 살 아래의 동생으로, 당대 이름난 문화예술인과 학자들을 거느리고 다녔던 안평대군을 죽였고, 9살 아래의 금성대군(영화 속 이준혁 분)을 영주시 순흥면으로 유배보냈다. 금성대군은 나이 차이가 있는 형 수양보다, 15살 어린 조카인 단종과 잘 어울렸다.
금성대군은 단종 복원을 위해 순흥부사와 연계해 무장봉기 계획을 세웠다는 이유로 31세에 사사됐다. 영월과 가까운 순흥이 당시에는 큰 도호부급 고장이었지만 세조의 분노로 작은 면으로 줄어들었다.
세조는 나쁜 짓을 많이 했으니,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평정심을 찾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평생 가려움증(피부병)에 시달려 충청도 온양에서 온천욕을 하고, 강원도 평창 월정사와 상원사까지 가 깨끗한 물에 몸을 씻었다.
그러나 세조는 큰 아들 의경세자가 18살에 사망한다. 임금 수업을 탄탄히 받고 있던 왕세자가 갑자기 죽자 “세종의 묏자리는 후손이 끊어지고 장남을 잃는 자리”라고 과거 풍수가가 말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원래 세조 부친인 세종은 죽기 전 “아버지(태종) 옆에 묻히고 싶다”고 말해 태종의 능이 있는 헌릉(獻陵·현 서울 서초구 내곡동) 근처에 먼저 승하한 소헌왕후와 합장돼 영릉(英陵)으로 불리었다.
하지만 이를 불길하게 여긴 세조가 아버지의 천장을 논하다, 결국 아들인 예종 1년인 1469년에 경기도 여주시 영릉으로 옮겼다. 그 결과로 여주는 대왕을 쌀에도 붙이고, 거리와 행정구역에도 붙여 세종대왕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세조는 왕에 오른 지 13년이 된 1468년, 아들 예종에게 양위하고 상왕이 됐으나 하루 만에 사망했다. 세조는 상왕을 하루밖에 하지 못했다. 의경세자의 동생인 예종도 재위 1년만에 요절했다. 다음 왕은 예종의 어린 아들이 아니라, 의경세자의 아들인 자을산군(성종)이 작은 아버지 예종의 양자로 입적되면서 물려받게 된다.
세조는 미리 자신이 묻힐 자리를 경기 남양주 진접읍에 마련하려 사람들의 접근을 막았다. 국립수목원의 빽빽한 수목이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다. 세조는 백성들에게도 미안했는지, 석곽과 묘실을 만들지 말고 회곽묘만 만들어 안장하라며 자신의 왕릉(광릉)의 간소화를 미리 지시했다. 그런데 ‘왕사남’이 인기를 끌면서 관객들이 광릉(光陵)에 계속 별점 테러를 가하고 있다.
‘수양대군의 책사’한명회라는 빌런
‘왕사남’에서 빌런은 한명회만 나올 뿐, 세조도 나오지 않고 몇 차례 언급만 된다. 한명회는 계유정난 때 반란군 지휘관인 수양대군 편에 선 책사로 수양을 왕이 될 수 있게 만드는 데 결정적 공을 세웠다. 한명회는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뛰어난 책사인 ‘장량’에 비교된다.
한명회는 계유정난을 통해 진압군의 대표인 김종서를 척살하며 반란을 성공시키고, 사육신의 단종 복위 계획도 사전에 알고 차단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일등공신이 된 훈구파의 대표 한명회는 2차례 영의정을 지내고, 세조와는 사돈으로 예종과 성종 두 임금을 사위로 두는 막강한 세도가가 된다.
한명회는 집안이 괜찮았지만, 과거에 여러 차례 낙방한 후 수양의 측근인 절친 권람을 통해 수양을 만나 거사를 논하게 되면서 ‘책사’로 불리게 됐다. 계유정난의 반대파 명단이 적힌 살생부도 한명회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명회는 이시애의 난때 위기를 맞기도 했고, 여생을 자연을 벗삼아 지내려고 한강가에 지은 압구정이 중국 사신들에게 소문이 나고, 증축 문제로 성종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성종 초기 수렴청정을 했던 세조의 부인 정희왕후 편에 섰지만 성종이 홀로서기에 나서면서 권력이 급속히 약화됐다. 73세로 사망한 한명회가 사후 연산군 시절 폐비 윤씨와 관련된 갑자사화에 연루되면서 부관참시를 당하기도 했지만 중종 때 사후 복권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엄흥도는 기록이 적어 상상하기 좋은 캐릭터
필자는 1990년대에 영월에 여행 가 영월읍내에 있는 관풍헌(觀風軒)을 방문하고 군청 공무원으로부터 엄흥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관풍헌은 조선시대 지방 관서에서 정무(政務)를 보던 중심 건물인 동헌(東軒)이다. 단종은 1457년 여름 서강의 끝자락인 영월 청령포 주변에서 홍수가 나 관풍헌에 와 있다가 여기서 사약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동헌의 동쪽에는 단종이 시를 읊었다는 자규루(子規樓)가 있다.
엄흥도는 영월의 호장(戶長)이다. 호장은 향리들의 우두머리다. 엄흥도는 세 명의 아들과 함께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고 자신의 선산에 안장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삼족을 멸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엄흥도는 세 아들을 각자 뿔뿔이 흩어지게 했다. 엄흥도도 조용히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엄흥도는 관련 기록이 적어 상상하기 좋은 캐릭터다. 영화 ‘왕사남’에서도 엄흥도 아들이 나온다. 시간이 흘러 숙종과 정조 시기에 와서 사육신과 생육신도 복권된다. 엄흥도의 명예도 자연스럽게 회복된다. 어쨌든 엄흥도의 충성심과 의리는 기릴만하다. 엄흥도 캐릭터를 ‘왕사남’이 잘 활용했다.
수양대군(세조)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와 드라마는 많았다. 영화 ‘관상’(2013년)에서는 배우 이정재가 수양대군의 강한 권력에 대한 집착을 잘 보여주었다. KBS 드라마 ‘왕과 비’(1998~ 2000년)는 세조를 선 백경게임랜드 인으로 그렸고, 단종의 충신인 김종서를 별로 좋게 보지 않았다.
KBS ‘공주의 남자’(2011년)는 김영철이 열연한 조선의 마키아벨리 수양대군과 그의 정치적 숙적이었던 김종서의 두 자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뤄 인기를 끌었다. 수양에게 당한 피해자 입장에서는 영화 ‘단종애사’(1963년) 등이 있다.
25일 기준 누적 관객 손오공릴게임 수 1500만명을 돌파한 국민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억울하게 죽은 단종의 이야기다. ‘왕사남’의 차별점은 역사를 단순화했다는 점이다. ‘세조실록’ 9권에는 “노산군이 스스로 목을 매어 죽으니 예로써 장사를 지냈다”고만 돼있다. 거기에 약간의 상상을 입혔다. 그래서인지 스토리텔링이 꽉 차지는 않지만, 영화 줄거리를 이해하기가 쉬워 남녀노소가 관람할 수 있 온라인야마토게임 다.
‘왕사남’은 1457년 삼촌인 수양에 의해 왕위를 찬탈당하고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영월의 청령포로 유배온 어린 선왕 이홍위(박지훈)와 가난한 마을을 부흥시키기 위해 옆마을 여우골 사례를 참고해 유배지를 자처했다가 어린 왕을 돌보는 광천골 촌장 엄흥도(유해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영화 스토리는 매우 단순하 바다이야기APK 다. 압축하면 단종-엄흥도-한명회, 이 세 사람이 삼각형의 꼭지점을 형성하고 있다. 세조 세력은 한명회(유지태) 한 명이 메인 빌런이다. 한명회는 단종, 엄흥도와 불화한다. 단종과 엄흥도는 인간적으로 끌린다. 이게 끝이다.
단종과 엄흥도가 인간적으로 끌리는 과정이 별로 정교하지도 않다. 단종은 광천골 사람들이 만들어준 음식을 맛있게 먹고, 게임몰 또 이 마을 청년들에게 글자를 가르치면서 서로 하나가 된다. 그러다 엄흥도와 함께하는 단종의 최후장면에서는 모두가 울게 된다. 짧은 세월이지만 단종이 엄흥도와 마을사람들을 만나 교감하며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과정이 눈물겹다.
어린 단종이 16세에 죽임 당하는 것의 억울함
어린 왕이 16세에 죽임을 당하는 게 얼마나 억울한가. ‘왕사남’에서는 단종의 이런 억울한 심경이 잘 전달됐다. 단종은 태어났더니 할아버지가 세종대왕이다. 아버지 문종과 단종 본인은 모두 적장자(嫡長子)다. 적장자는 정실부인(正室)에게서 낳은 맏아들을 말한다. 조선시대 27명의 왕 중에서 적장자가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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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군에서는 원주시 신림면 황둔리와 영월군 주천면 등을 잇는 단종대왕 유배길, 일명 ‘통곡의 길’ 코스를 정해놓았다. ‘통곡의 길’이란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마음 둘 곳 없어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되돌려야 했던 단종 신하들의 가슴 먹먹했던 고통의 길이다. 임금에게 전할 사약을 손수 들고 가는 신하들이 울고 또 울며 걷던 애달픈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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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대군은 단종 복원을 위해 순흥부사와 연계해 무장봉기 계획을 세웠다는 이유로 31세에 사사됐다. 영월과 가까운 순흥이 당시에는 큰 도호부급 고장이었지만 세조의 분노로 작은 면으로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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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대군의 책사’한명회라는 빌런
‘왕사남’에서 빌런은 한명회만 나올 뿐, 세조도 나오지 않고 몇 차례 언급만 된다. 한명회는 계유정난 때 반란군 지휘관인 수양대군 편에 선 책사로 수양을 왕이 될 수 있게 만드는 데 결정적 공을 세웠다. 한명회는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뛰어난 책사인 ‘장량’에 비교된다.
한명회는 계유정난을 통해 진압군의 대표인 김종서를 척살하며 반란을 성공시키고, 사육신의 단종 복위 계획도 사전에 알고 차단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일등공신이 된 훈구파의 대표 한명회는 2차례 영의정을 지내고, 세조와는 사돈으로 예종과 성종 두 임금을 사위로 두는 막강한 세도가가 된다.
한명회는 집안이 괜찮았지만, 과거에 여러 차례 낙방한 후 수양의 측근인 절친 권람을 통해 수양을 만나 거사를 논하게 되면서 ‘책사’로 불리게 됐다. 계유정난의 반대파 명단이 적힌 살생부도 한명회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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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흥도는 기록이 적어 상상하기 좋은 캐릭터
필자는 1990년대에 영월에 여행 가 영월읍내에 있는 관풍헌(觀風軒)을 방문하고 군청 공무원으로부터 엄흥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관풍헌은 조선시대 지방 관서에서 정무(政務)를 보던 중심 건물인 동헌(東軒)이다. 단종은 1457년 여름 서강의 끝자락인 영월 청령포 주변에서 홍수가 나 관풍헌에 와 있다가 여기서 사약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동헌의 동쪽에는 단종이 시를 읊었다는 자규루(子規樓)가 있다.
엄흥도는 영월의 호장(戶長)이다. 호장은 향리들의 우두머리다. 엄흥도는 세 명의 아들과 함께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고 자신의 선산에 안장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삼족을 멸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엄흥도는 세 아들을 각자 뿔뿔이 흩어지게 했다. 엄흥도도 조용히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엄흥도는 관련 기록이 적어 상상하기 좋은 캐릭터다. 영화 ‘왕사남’에서도 엄흥도 아들이 나온다. 시간이 흘러 숙종과 정조 시기에 와서 사육신과 생육신도 복권된다. 엄흥도의 명예도 자연스럽게 회복된다. 어쨌든 엄흥도의 충성심과 의리는 기릴만하다. 엄흥도 캐릭터를 ‘왕사남’이 잘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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