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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과 삶]해적, 국가 바깥 ‘대안적 삶’의 설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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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행복이13
    댓글 0건 조회 1회 작성일 26-04-05 20:55

    본문

    300년 전 해적의 ‘황금시대’ 조명전쟁 동원 뒤 일자리 잃은 선원들저임금·구타·체벌 피해 해적으로“범죄의 선택” 아닌 노동·생존전략
    선장 직접 뽑고, 전체 의사 반영여성 해적은 전투에도 적극 참여젠더·계급 제약 넘어서는 공간
    최근 아시아 곳곳의 반정부 시위 현장에선 낯익은 해적기가 자주 목격됐다. 밀짚모자를 쓴 해골, 만화 <원피스>의 주인공 루피가 이끄는 해적단의 깃발이다. 만화 속 세계정부라는 불의한 권력에 맞서는 밀짚모자 해적단이 고난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저항의 상징으로 현실 세계와도 공명하고 있는 셈이다.
    해적이 저항과 연대의 상징으로 호출되는 이들 장면은 <만국의 악당>이 던지는 질문과도 닿아 있다. “300년도 더 전에 활동했던 범죄자 집단이 왜 여전히 이렇게 인기가 많은가?” 마커스 레디커 피츠버그대 대서양사 석좌교수는 대서양 해적의 ‘황금시대’를 중심으로 해적을 범죄자나 낭만적 모험가로 바라보는 통념을 넘어 제국과 자본의 폭력에 밀려난 하층 계급의 대안적 사회 실험으로 조명한다.
    책은 1726년 7월12일 해적 윌리엄 플라이가 보스턴의 교수대에 올라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의 몸놀림은 돛대에 오르는 선원처럼 경쾌했고, 손에는 작은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풍파를 겪은 얼굴이었지만, “유쾌한 웃음”이 서려 있는 그에게서 죄책감이나 뉘우침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별것 없는 부모”를 둔 가난한 사람이었던 갑판장 플라이는 선원들을 잔인하게 다룬 선장과 항해사들을 죽이고, 선상 질서를 새롭게 세웠다. 검은 깃발에 해골과 교차하는 뼈를 수놓은 ‘졸리 로저’를 내건 이들은, 배 이름을 ‘명예의 복수호’로 바꾼 후 일확천금의 꿈을 찾아 항해하다 붙잡혔다. 그는 선원들에 대한 “부당대우”를 항의하고, 선주들의 만행을 비판하다 최후를 맞았다.
    이렇게 책에서 만나는 수십 명의 해적들은 그 시대의 근본적 문제와 닿아 있다. 황금시대(1650~1730년)에서도 이 책이 주목하는 시기는 해적 행위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1716~1726년 약 10년이다. ‘블랙비어드’ 에드워드 티치, 바살러뮤 로버츠, 에드워드 로 등 <원피스>의 모티프가 된 해적들이 활개 친 당시, 4000명 안팎의 선원들이 검은 깃발 아래 집결했다 흩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이 끝난 뒤 대서양에는 전시에 동원됐다가 일자리를 잃은 선원들이 넘쳐났다. 그런 잉여 노동력이 해적으로 재편됐던 당시 잉글랜드 등 유럽 주요국은 대서양 식민지 무역을 본격적으로 확대했다. 해적은 이 거대한 교역망, 특히 노예무역과 수송로를 교란하며 제국의 이익에 직접적인 위협으로 부상했다. 해적의 황금시대는 단순한 모험담의 배경이 아니라 노동과 자본, 권력과 주변부가 격렬하게 교차한 역사적 순간이었던 셈이다.
    저자는 ‘아래로부터의 역사’의 관점으로 해적을 제국의 경계를 거스르는 다인종·다국적·다문화의 ‘잡색 부대’이자 착취당한 노동자 집단으로 조명한다. 당시 상선과 군함의 선원들은 매우 낮은 임금, 잔혹한 구타와 체벌, 임금 체불, 질병과 굶주림, 무제한적 선장의 권력 아래 놓여 있었다. 이런 삶이 너무나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에 많은 선원은 차라리 해적이 됐다. 단순히 “범죄의 선택”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바다 위 노동과 생존 전략이었던 셈이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해적이 만들어낸 대안적 삶이다. 해적은 국가의 법을 거부했지만, 무법 상태가 아니라 분명한 규칙과 절차를 가진 공동체였다. 대표적인 것이 선장 선출 방식이다. 해적선에선 선원들이 직접 선장을 뽑고, 평의회나 전체 선원들의 의사에 따라 운영됐다. 다친 동료에게 일정한 보상을 지급하는 규칙은 오늘날 사회보장제도와 비슷한 측면이 있었다. 이들은 맹세를 통해 하나로 뭉쳤고, “정당하게 대우받는” 세계를 구축하려고 시도했다. “이 바다 약탈자들은 결코 ‘졸리 로저의 기치를 불명예로 내려 접히게 두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는데, “그들의 자부심 넘치는 자기 인식”을 드러낸다.
    이 시기 해적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여성 해적 앤 보니와 메리 리드의 존재다. 두 사람은 남장을 한 채 배에 올랐고, 전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남성의 영역인 바다에서 낯선 존재인 이들의 삶을 저자는 하층 계급 여성의 역사 속에 위치시킨다. 경제적 생존, 계급적 제약을 넘어서려 한 이들을 통해 해적선이 기존 젠더 질서에 균열을 내는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책은 해적을 마냥 미화하지 않는다. 해적은 폭력을 썼고, 잔혹 행위를 저질렀다. 그럼에도 저자는 해적이 “인류 모두의 적”으로 호명된 진짜 이유를 묻는다. 책에 따르면 해적은 실제로 모든 사람의 적이라기보다, 상인, 노예무역 자본, 식민지 정부, 왕권의 적이었다. 수많은 사람을 노예로 만들고 강제노동으로 부를 축적한 지배 권력은 더 근본적인 폭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지배 권력에 대항하는 프롤레타리아 무법자 집단을 국가는 ‘만국의 악당’으로 선포했고, 대서양 자본주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절멸 캠페인으로 이어졌다.
    ‘졸리 로저’는 그저 해적기가 아니다. 해골과 교차한 뼈, 모래시계 같은 도상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 상징이 오늘날에도 살아 있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문양이 아니라 기존 질서를 거부하고 다른 규칙을 상상하는 깃발이기 때문이다. 권력의 정당성을 의심하는 태도, 억압적 질서 바깥에 다른 공동체를 상상하는 태도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해적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반역자였기 때문이다. … 이 무법자들은 대담하고 반항적인 삶을 살았으며,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강력한 권력자들과 억압적인 조건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
    세 번째로 열린 ‘노 킹스(No kings)’ 시위 참가자가 800만명을 넘어서며 최대 규모를 경신했다. 언론에 보도된 사진 가운데 가장 눈에 띈 장면은 미합중국 헌법 전문을 거대한 두루마리로 만들어 행진하는 뉴욕 시위대의 모습이었다. 그 첫머리에는 ‘우리 인민(we the people)’이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240년 동안 효력을 유지해온 헌법은 바로 이 문구의 주인공을 자신의 저자로 삼는다. 두루마리를 들고 행진하는 이들은 인민과 왕을 대비시키며, 미국의 건국정신에 ‘왕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손바닥에 ‘왕’자를 쓴 사람을 대통령으로 모셔본 국가의 국민으로서도, 민주공화국에 왕의 자리는 없다는 사실은 진부한 진리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대에 더 많은 국가들이 권위주의의 유혹에 기울고 있다는 현실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이는 ‘노 킹스’ 시위가 일어나고 있는 미국 정치가 드러내는 또 다른 진실이기도 하다. ‘우리 인민’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려는 요청은 때로 권위주의적 통치자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더 많은 사람이 광장에 모일수록 스스로 통치하기가 오히려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우리 인민’은 언제나 대표자를 필요로 한다. 분열된 우리는 진정한 왕을 필요로 하는지도 모른다. 왕이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왕정을 이상으로 삼아온 오랜 전통에서 왕은 자신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을 일치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그려졌다. 다른 대표자들은 각자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왕이야말로 분파를 넘어 하나의 질서를 보증할 수 있다는 논리다. 정치학자 에릭 넬슨의 해석에 따르면, 미국 건국 역시 이러한 이상과 무관하지 않았다. 건국을 주도한 이른바 ‘애국자’들은 왕당파였으며, 그들이 반대한 것은 영국의 국왕이 아니라 의회였다. 그들이 경계한 것은 단일한 권위가 아니라 타락한 다수였으며, 이 정신은 미국 대통령제에 담겼다.
    황금을 사랑하고 모든 공식기구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기 좋아하는 트럼프는, 다시 위대해질 미국의 영광과 자신의 영광을 분리하지 않는 데에 진심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임기제 대통령인 그는 영영 왕정의 이상을 구현할 수 없다. 미국 헌법은 왕정의 이상을 수용했지만 대통령의 임기를 제한하면서 그 이상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왕이지만 진정 왕일 수 없다. 이 기묘한 이중구조에서 부각되는 것은 권한보다는 책임이다. 국가와 국민 전체를 아우르라는 사실상 불가능한 요구다. 그리하여 끝끝내 부재하는 왕의 자리를 사유하는 일은 분열을 넘어서면서도 권위주의를 경계하는 시도가 된다.
    왕이 될 수 없지만 왕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과, 왕을 거부하면서도 진정한 왕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순 속에서 오늘날의 정치가 작동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왕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열망과 그것이 불가능한 현실 사이에서, 어떤 대표자들은 공공의 이익과 사적인 이익을 혼동하게 만드는 빌미를 얻고 있는지 모른다. 현대 정치의 이 같은 맹점 속에서 누군가는 권위의 텅 빈 의자를 노리고 있다.
    ‘왕이 없다’는 구호가 권위주의로 경도되는 정치에 대한 경종이라면, 왕이 없는 시대에 왕을 사유하는 것은 권위의 경계를 세우는 일이다. 권위의 자리가 결코 비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폴란드 헌정에 대해 조언할 때 루소는 이러한 경고를 덧붙인 바 있다. “여러분! 법치를 확립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곳 어디에서나 실제 통치를 하는 것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숭고해 보이는 헌법조차 ‘우리 인민’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텅 빈 권위의 의자가 될 수 있다. 그 의자에는 반드시 누군가 앉게 될 것이다. 왕은 사라졌지만 왕의 자리는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왕이 없는 공화국에서 왕을 사유해야 하는 이유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모욕 시위를 주도하던 극우 성향 단체 대표가 구속되면서 ‘평화의소녀상’에 쳐져 있던 바리케이드가 1일부터 수요시위 중에는 잠시 철거된다. 2020년 6월 극우 단체의 집회장소 선점 등을 이유로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요청해 설치된 지 약 6년 만에 소녀상이 몇시간 동안이나마 자유로운 모습을 찾게 됐다.
    정의연은 1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평화의소녀상 인근에서 제1746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를 열었다. 정의연은 경찰, 종로구청과 협의해 이날부터 수요시위가 열리는 중에만 소녀상 앞 바리케이드를 치우기로 했다.
    집회를 앞두고 오전 11시30분쯤 경찰이 바리케이드를 치우자 활동가와 시민들이 소녀상 근처에 자란 이끼를 제거하고 낙엽을 걷어냈다.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도 소녀상을 찾아 함께 청소했다. 시민들은 6년 만에 자유로운 모습을 찾은 소녀상 옆 의자에 앉아 소녀상의 손을 잡아보기도 하고, 어깨에 손을 얹기도 했다.
    브라질에서 여행차 한국을 방문한 프리실라 올리비아(40)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인 매리 린 브락트의 <하얀 국화>라는 소설을 읽은 뒤 소녀상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바리케이드가 치워진 날에 올 수 있어서 행운”이라며 “미국, 이란 등 전쟁이 있는데 여성들이 항상 희생자가 되고 이용당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엘살바도르에서 여행 온 이사밸라 아얄라(22)는 “한국 드라마를 보다가 한일 관계에 관해 관심이 생겨서 찾아왔다”며 “집회 내용은 한국어라 잘 모르지만, 같은 여성으로서 슬픔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날 수요시위에서는 지난달 28일 별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기리는 추모 발언이 이어졌다.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은 “할머니는 평생의 소원이었던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죄와 배상을 끝내 보지 못한 채 원통하게 눈을 감았다”고 말했다. 이어 “감옥처럼 소녀상을 둘러싸고 있는 펜스는 여전하고 거대한 역사부정의 카르텔도 견고하다”며 “할머니께서 지켜 오신 수요시위 현장 또한 아직 진정한 평화를 되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집회가 끝난 오후 1시쯤 경찰은 소녀상 근처에 바리케이드를 다시 설치했다. 종로경찰서는 1~2주 정도 집회 상황을 지켜본 뒤, 위험 요소가 없다고 판단되면 바리케이드를 치울 것으로 전해졌다. 정의연은 종로구청에 “공공조형물 1호인 평화의 소녀상 보존 등을 위해 CC(폐쇄회로)TV를 설치해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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