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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버츠 대법원장(앞줄 가운데) 등 미국 연방 대법원 대법관 9명 전원의 사진. ⓒREUTERS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자신이 통치하는 패권국가 미국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2월20일 미국 대법원이 상호관세를 위헌으로 판결하자, ‘트럼프 팀’은 세계 최고 권위의 공식 브리핑 문서인 백악관 팩트시트(설명 자료)에서 미국을 ‘국가부도 위기 직전의 나라’로 만들어버렸다. 전 세계를 상대로 한 거대한 ‘약자 코스프레’이자, 관세 폭탄을 정당화하기 위한 새빨간 거짓말이다.
오리지널골드몽 또한 트럼프 행정부는 2월24일부터 다섯 달 동안 세계 주요 나라들의 경제 시스템이 합리적인지(reasonable) 아닌지 따지는 ‘사실상의 취조’를 무더기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취조’는 협박 수단이거나 혹은 ‘용의자(국)’의 경제제도를 미국 입맛에 맞게 바꾸라는 구조조정 압박이다. 이 모든 사연은 2025년 4월2일, ‘미국 해방의 날’로 거슬러 바다이야기프로그램다운로드 올라간다.
“찾았다! IEEPA를”
트럼프는 ‘미국을 지긋지긋하게 괴롭혀온’ 우방국들로부터 ‘해방’되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 ‘해방의 무기’는 관세였다. 이날, 그는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나라의 모든 상품에 기본 관세 10%를 부과한다고 선포했다.그러나 악당들 모두가 똑같은 바다이야기무료 벌을 받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대규모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해온 ‘더 나쁜 놈들’은 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래서한국·일본·유럽연합(EU) 등에겐 기본 관세에 15% 정도의 보복성 관세(상호관세)를 얹기로 했다(합치면 25%). 한국 등 ‘악당 국가’들은 지난해 여름과 가을 내내 트럼프 행정부와 힘든 협상을 이어간 끝에 대체로 기본 관세에 5% 황금성게임다운로드 정도를 더 얹어 ‘퉁치는’ 정도(15%)로 합의했다. 대신 미국에 각각 수천억 달러 규모의 투자와 함께 미국산 에너지 수입을 약속해야 했다.
이로써 미국은 ‘자유무역의 상징’에서 ‘포괄적 관세장벽’의 나라로 변신했다. 이 변신은 비정상적으로 신속했다. 미국 등 서방국가의 과세권(세목을 만들고 그 바다이야기 세율을 정하는 권한)은 의회에 있다. 관세 논의가 의회에서 이뤄졌다면 입법까지 몇 달에서 몇 년이 걸렸을 터이다. 의회를 통과하더라도, 이 관세법엔 ‘사전조사(특정 국가가 해당 관세를 부과받아 마땅한가)’ ‘관세부과 기간’ ‘관세율 상한’ ‘의회 승인 요건’ 등이 규정된다. 즉, 집행하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트럼프는 ‘미국 해방’ 선포 즉시 관세를 부과했다. 부과 기간은 사실상 무제한이었다. 관세율마저 10%, 50%, 심지어 200% 이상까지 마음 내키는 대로 불러가며 상대국을 농락했다.
트럼프 팀은 관세정책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낡은 법전들을 세세히 뒤졌을 것이다. 일정한 ‘법 기술’이 필요하지만, 의회 간섭 없이 대통령(행정부) 단독으로 자유롭게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법적 수단들을 찾아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 의회는 통상 협상에 대해 ‘빠른 대응이 필요하고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외교·안보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이유로 일부 과세권을 대통령에게 ‘조건부 위임’할 수 있는 여러 법안을 만들어놓았다. 그러나 역대 미국 대통령은 자신에게 위임된 관세부과 권한의 사용을 자제해왔다. ‘관세장벽’ 같은 포괄적 과세권은 의회의 입법 사항이고, 대통령은 외교·안보와 관련된 특수 목적을 위해 제한적으로만 관세 권한을 사용한다는 암묵적 규칙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그런 관행에 얽매일 사람이 아니었다. 대통령의 관세 권한을 심지어 입법취지를 이탈해서 신나게 휘두를 수 있는 법안을 발견했다. 그것이 바로 ‘상호관세’의 법률적 근거인 IEEPA다.
1977년 제정된 IEEPA(International Emergency Economic Powers Act)를 의역하면 ‘국제적 차원의 비상사태가 발생할 때 대통령에게 경제적 권한을 위임하는 법률’이다. 이 권한의 발동엔 ‘사전조사’ 따위가 필요 없다. 외국이 미국에 무력도발을 가했는데(비상사태), 한가하게 조사나 할 것인가.대통령이 ‘지금은 국가비상사태다’라고 선포하기만 하면 IEEPA에 규정된 권한들을 발동할 수 있다. ‘도발국과의 수출입 금지’ ‘달러 송금 및 결제 차단’ ‘미국 내 도발국의 자산 동결’ 등이다. 이 법률에 관세 관련 조항은 없다. IEEPA는 애당초 통상 관련 법률이 아니라 전쟁·테러 등 도발국을 ‘제재하기 위한 법’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러시아·이란 등이 이 법으로 제재받은 바 있다.
트럼프는 IEEPA를 통상법처럼 사용하기 위해 두 단계의 ‘논리적 점프’를 감행했다. 첫째, 적국의 도발이 아니라 미국의 만성적 무역적자를 국가비상사태로 선포한다. 둘째, IEEPA의 ‘도발국 제품 수입금지’ 조항에서 ‘수입을 막을 수 있다면 관세율 인상도 당연히 가능하다’는 논리를 추출한다. 대미 무역 흑자국들은 은연중에 미국의 적국이나 테러범 취급을 받은 것이다.
또한 IEEPA는 관세 자체를 언급하지 않으니 ‘사전조사’ ‘관세부과 기한’ ‘관세율 상한선’ 따위의 조항도 없다. 트럼프가 선포 즉시 상호관세를 시행하고 ‘네 행위를 봐가면서 관세율을 부과할게’라며 우방국들을 압박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1977년의 미국 의회는 ‘특정한 적국을 경제적 수단(거래 금지 및 달러망 퇴출)으로 정밀타격’하는 권한을 대통령에게 위임했다. 2025년의 트럼프는 이 권한을 전 세계 모든 나라에 무제한적 관세를 부과하는 ‘포괄적 통상정책 수단’으로 변질시켰다. IEEPA를 관세부과용 몽둥이로 휘두른 것은 역대 미국 대통령 중 트럼프가 처음이다. 그에게 IEEPA는 ‘자유’였다.
지난 2월20일 미국 대법원 판결의 핵심은 이렇다. ‘IEEPA의 수입 규제 문구만으로 대통령이 다른 나라에 제멋대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받았다고 볼 수는 없다.’ 대법원은 행정부가 의회의 권한을 과도하게 침해했다며 IEEPA 기반 관세들에 위헌 판결을 내렸다.
트럼프는 격노했다. ‘대법관들이 해외 불순세력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음모론까지 토해냈다. 트럼프 팀은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부터 ‘대안적 법 기술’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IEEPA 기반 관세는 받지 못하게 되었으나 어떻게든 관세 수입을 유지해야 했다. 그 방법들을 대법원 판결 당일 낸 백악관 팩트시트에 고스란히 담았다.
팩트시트는 우선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나라의 모든 물품에 2월24일부터 10%의 임시 관세를 부과하겠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로부터 단 몇 시간 뒤에 임시 관세를 15%로 5%포인트나 올리겠다고 말했다. 단 1%의 관세 수입도 포기할 수 없다는 트럼프의 강박이 엿보인다.
이 임시 관세의 법적 근거는 1974년에 제정되었으나 단 한 번도 시행되지 않은 무역법 제122조다. ‘미국이 국제수지 문제로 심각한 국가적 위기 상황에 처하는’ 경우, 대통령의 권한으로 수입을 규제할 수 있다. 관세율 상한이 15%에 불과하며, 부과 기간도 150일(7월24일까지)에 그친다는 것은 결점이다. 그러나 122조에는 엄청난 장점이 있었다. ‘사전조사’와 ‘의회 승인’을 요구하지 않으므로 즉각(2월24일) 시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트럼프는 하루라도 관세를 받지 못한다면 울화가 치밀어 견딜 수 없는 체질이다.
그러나 지금의 미국이 과연 무역법 122조의 발동 조건인 심각한 ‘국제수지 위기’에 처해 있는가. 팩트시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2024년 말 기준 미국의 순(純)대외채무는 26조 달러로 미국 GDP의 89%에 달한다. 미국의 대외채무가 오늘 당장 만기를 맞는다면, 미국은 연간 경제 생산의 89%를 내놓아야 할 판이다.”
거시경제학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실소를 금치 못할 문구다. 순대외채무는 ‘미국이 다른 나라에 투자하거나 빌려준 돈’에서 ‘다른 나라가 미국에 투자하거나 빌려준 돈’을 뺀 수치다. 그 액수가 마이너스 26조 달러라니, 그리고 모든 채권자가 어느 날 갑자기 동시에 채무상환을 요구한다니, 섬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미국의 모든 대외채무 만기가 한날한시에 도래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10억 분의 1이나 100억 분의 1? 더욱이 미국 대외채무의 대부분은 미국 정부가 상환할 필요가 없다. 예컨대 당신이 1000달러 상당의 애플 주식을 산다면, 미국의 대외채무는 1000달러 늘어난다. 현대차가 미국에 공장을 짓기 위해 수백억 달러를 투자한다면 미국의 대외채무는 수백억 달러 증가한다. 이걸 미국 정부가 갚을 필요는 없다.
팩트시트에 이런 황당한 문장이 들어간 이유는 뭘까? ‘미국이 국가부도 직전 상황’이어야 122조를 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송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소송이 제대로 시작되기도 전에 임시 관세의 부과 기간인 150일이 지나갈 것이다.
이 150일 동안 트럼프 행정부는 전 세계의 숨통을 영구적으로 조일 거대한 사냥을 준비할 심산이다. IEEPA로 구축했던 관세장벽을 더 높이 위협적으로 재건할 것이다. 2월20일 팩트시트를 읽어보자. “대통령은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무역법 301조 권한을 발동해 미국의 통상 활동에 부담을 주거나 제약을 가하는, 외국의 불합리(unreasonable)하고 차별적(discriminatory) 행위와 정책, 관행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트럼프의 계획은 다음과 같다. 150일 동안에는 전 세계로부터 15% 임시 관세를 포괄적으로 징수한다. 이 기간 USTR은 다른 나라들(특히 무역흑자국)에게 ‘301조 조사’를 시행해 고율 관세 추징 근거를 잡는다. 임시 관세의 시행이 끝나는 7월 말부터 ‘301조 관세’를 받는다. 무역법 122조는 IEEPA에서 무역법 301조로 넘어가는 징검다리다.
301조에 따르면, 무역 상대국이 미국에 불리한 불공정 행위를 하는 경우, 대통령은 해당국에게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관세부과 기한은 무제한이다. 관세율도 얼마든지 올릴 수 있다. 트럼프가 좋아할 만하다. 그러나 결점도 있다. USTR의 사전조사가 필요하고, 이에는 상당한 기간(통상적으로, 한 국가의 한 사안에도 6개월~1년)이 걸린다. 특히 301조는 특정 국가(주로 중국)의 특정 행위(지적재산권 탈취)를 콕 찍어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는 용도였다. IEEPA처럼 세계 모든 나라를 대상으로 ‘포괄적 관세장벽’을 구축하는 수단으로는 ‘상상’된 적이 없다.
그러나 2월20일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 명의의 성명서를 보면, 트럼프가 301조의 용도를 완전히 바꾸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01조에 따라 여러(several) 조사들을 개시해서, 수많은 무역 상대국들이 미국의 통상에 대해 저지르는 부당하고 불합리하며 차별적인 행위·정책·관행들에 대응할 것이다. 이 조사들은 대다수의 주요 무역 상대국(most major trading partners)에 대해 시행할 것이다.”
이 성명에서 주목할 단어는 ‘여러 조사들’ 그리고 ‘수많은’ ‘대다수’의 ‘무역 상대국’이다. 특정 국가의 특정 관행이 아니라 대다수 주요국들의 모든 경제제도를 ‘싹쓸이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조사 범위가 매우 넓다. WTO 규범이나 무역협정을 위반하지 않아도 미국이 ‘불합리하다’고 판단하면 301조에 따른 조사를 받을 수 있다.
팩트시트 및 USTR은 EU 일부 국가와 캐나다 등이 시행 중인 디지털세를 301조 조사 대상으로 꼽는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이 나라들에서 발생한 수익을 다양한 기법으로 빼돌려 법인세를 거의 내지 않았다. 이에 현지 매출 2~3%의 디지털세를 매기자 ‘미국 플랫폼 기업에 불이익을 주는 불합리하고 차별적 제도’라며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쿠팡에 대한 조사 역시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 대우’로 301조의 난사 범위에 포함될 수 있다. 건강보험의 ‘약품 가격 통제’는 ‘미국 제약사에 불이익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아시아 국가들이 비용을 아끼기 위해 해양오염 규제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수산물을 싼 가격으로 수출해서 미국 어업을 망쳤다고 한다. 자국에 필요한 수준 이상으로 생산한 제품을 수출하는 행위(산업 과잉생산)도 301조 조사의 대상이다. 산업 및 농업에 대한 보조금도 포함된다. 과거의 301조가 특정 국가의 특정 제도를 정밀 겨냥한 라이플(소총)이었다면, 트럼프 2기의 301조는 전 세계 국가들의 경제제도 전반을 한꺼번에 난사할 수 있는 기관총이다. 미국의 포괄적 관세장벽을 다시 구축하겠다는 의도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가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REUTERS
결국 상황은 지난해 여름으로 돌아갔다. 당시 미국의 우방국들은 IEEPA 기반 상호관세를 낮추기 위해 경쟁적으로 트럼프에게 굴종했다. 2월24일부터 150일 동안에는 301조를 피하기 위해 다시 고개를 조아려야 한다. 301조는 IEEPA보다 더 악랄하다. IEEPA의 발동 조건은 미국의 내부 상황, 이 경우에는 만성적 국제수지 적자였다. 301조는 다른 나라들의 경제제도를 건드린다. IEEPA 기반의 압박이 ‘관세를 올리거나 대미 투자를 바치거나’였다면, 301조는 ‘고율 관세를 받거나 너희(무역 상대국)의 국내 제도를 우리(미국)에게 유리하게 고치거나’를 요구할 것이다. 당장 한국 정부가 첨단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주는 보조금이나, 국내 시장을 건전하게 유지하기 위한 공정거래 규제마저 미국에겐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301조 관세에는 부과 기한도 관세율 상한선도 없다. 트럼프 행정부는 다른 나라들의 경제주권을 희생물 삼아 ‘글로벌 구조조정’을 겨냥한 것으로 읽힌다.
‘법적 근거 없지만, 갈취는 계속할게’
팩트시트에 등장하지 않는 대량살상용 무기가 하나 더 있다. 1962년에 제정된 무역확장법 232조다. ‘특정 품목의 수입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될 때, 대통령이 수입량을 줄이거나 관세를 매길 수 있다. 이른바 ‘품목별 관세’다. 미국 상무부의 사전조사가 필요하지만 관세부과 기한이나 관세율 상한은 없다. 트럼프는 이미 철강·알루미늄·자동차 및 부품·반도체와 구리까지 ‘미국 제조업의 근간이자 안보 자산’이라며 232조를 적용해서 관세율을 대폭 올렸다. 문제는 트럼프가 마음만 먹으면 232조에 해당되는 품목을 무한정 늘릴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중도보수 성향 조세·경제 정책 싱크탱크인 ‘택스 파운데이션(Tax Foundation)’이 대법원 판결 당일 낸 자료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다양한 품목을 대상으로 232조 조사 12건을 진행 중이다. 어느 날 갑자기 짐작도 못한 품목이 ‘미국 안보를 위협하는 물품’으로 간주되어 ‘관세 폭탄’을 맞을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라면 무역법 301조로 만족할 만한 실적(?)을 올리지 못하는 경우, 무역확장법 232조 품목을 늘려 관세 수입을 확보하려고 시도할지도 모른다. 트럼프에게 무역확장법 232조는 언제든 새로운 품목을 추가해 관세를 무한 리필할 수 있는 ‘요술 방망이’다.
지난해 7월30일 무역 합의를 타결한 직후, 트럼프와 만난 한국 정부 협상단. ⓒ백악관 엑스
우방국들은 가만히 있어야 할까? IEEPA가 불법화되었다면 이를 빌미로 체결한 무역 합의로 떠맡은 대미 투자, 미국 에너지 수입 등의 의무를, 한국과 일본과 EU가 순순히 이행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백악관은 우방국들의 반발을 견제하기 위한 협박용 문구를 2월20일 팩트시트에 넣어두었다. “미국은 상호 무역과 관련된 법적 구속력 있는 합의들을 계속 준수할 것이며, 교역 상대국들도 같은 태도를 보이길 기대한다. (···) 향후 관세부과의 법적 근거는 달라지겠지만(편집자 주: IEEPA에서 예컨대 무역법 301조로) (···) 미국의 정책 기조 자체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 대법원 판결을 핑계로 대미 투자를 철회하거나 액수를 깎으려 시도한다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으름장이다. 무역법 301조와 무역확장법 232조라는 강력한 무기가 남아 있지 않은가. 법적 근거가 무너졌는데도 상대방에 대한 갈취를 이어가겠다는 이 뻔뻔함은, 트럼프 행정부가 우방국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IEEPA는 무너졌지만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건재하다. 트럼프는 무역법 122조로 벌어들인 시간 동안 무역법 301조 조사로 고율 관세의 법적 근거를 다시 구축하고, 필요하다면 무역확장법 232조로 품목별 장벽을 확대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놓았다. 문제는 관세뿐만이 아니다. 트럼프는 우방국들의 산업구조와 제도 변경까지 요구하는 새로운 통상 질서를 목표로 삼고 있는 듯하다. 이제 미국의 우방국은 각자도생의 굴욕을 멈춰야 한다. 반도체, 방산 부품 등 자신들이 틀어쥔 첨단 공급망을 어떻게 공동의 지렛대로 만들어 트럼프를 견제할지 서늘하게 계산해야 할 때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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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자신이 통치하는 패권국가 미국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2월20일 미국 대법원이 상호관세를 위헌으로 판결하자, ‘트럼프 팀’은 세계 최고 권위의 공식 브리핑 문서인 백악관 팩트시트(설명 자료)에서 미국을 ‘국가부도 위기 직전의 나라’로 만들어버렸다. 전 세계를 상대로 한 거대한 ‘약자 코스프레’이자, 관세 폭탄을 정당화하기 위한 새빨간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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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았다! IEEPA를”
트럼프는 ‘미국을 지긋지긋하게 괴롭혀온’ 우방국들로부터 ‘해방’되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 ‘해방의 무기’는 관세였다. 이날, 그는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나라의 모든 상품에 기본 관세 10%를 부과한다고 선포했다.그러나 악당들 모두가 똑같은 바다이야기무료 벌을 받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대규모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해온 ‘더 나쁜 놈들’은 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래서한국·일본·유럽연합(EU) 등에겐 기본 관세에 15% 정도의 보복성 관세(상호관세)를 얹기로 했다(합치면 25%). 한국 등 ‘악당 국가’들은 지난해 여름과 가을 내내 트럼프 행정부와 힘든 협상을 이어간 끝에 대체로 기본 관세에 5% 황금성게임다운로드 정도를 더 얹어 ‘퉁치는’ 정도(15%)로 합의했다. 대신 미국에 각각 수천억 달러 규모의 투자와 함께 미국산 에너지 수입을 약속해야 했다.
이로써 미국은 ‘자유무역의 상징’에서 ‘포괄적 관세장벽’의 나라로 변신했다. 이 변신은 비정상적으로 신속했다. 미국 등 서방국가의 과세권(세목을 만들고 그 바다이야기 세율을 정하는 권한)은 의회에 있다. 관세 논의가 의회에서 이뤄졌다면 입법까지 몇 달에서 몇 년이 걸렸을 터이다. 의회를 통과하더라도, 이 관세법엔 ‘사전조사(특정 국가가 해당 관세를 부과받아 마땅한가)’ ‘관세부과 기간’ ‘관세율 상한’ ‘의회 승인 요건’ 등이 규정된다. 즉, 집행하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트럼프는 ‘미국 해방’ 선포 즉시 관세를 부과했다. 부과 기간은 사실상 무제한이었다. 관세율마저 10%, 50%, 심지어 200% 이상까지 마음 내키는 대로 불러가며 상대국을 농락했다.
트럼프 팀은 관세정책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낡은 법전들을 세세히 뒤졌을 것이다. 일정한 ‘법 기술’이 필요하지만, 의회 간섭 없이 대통령(행정부) 단독으로 자유롭게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법적 수단들을 찾아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 의회는 통상 협상에 대해 ‘빠른 대응이 필요하고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외교·안보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이유로 일부 과세권을 대통령에게 ‘조건부 위임’할 수 있는 여러 법안을 만들어놓았다. 그러나 역대 미국 대통령은 자신에게 위임된 관세부과 권한의 사용을 자제해왔다. ‘관세장벽’ 같은 포괄적 과세권은 의회의 입법 사항이고, 대통령은 외교·안보와 관련된 특수 목적을 위해 제한적으로만 관세 권한을 사용한다는 암묵적 규칙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그런 관행에 얽매일 사람이 아니었다. 대통령의 관세 권한을 심지어 입법취지를 이탈해서 신나게 휘두를 수 있는 법안을 발견했다. 그것이 바로 ‘상호관세’의 법률적 근거인 IEEPA다.
1977년 제정된 IEEPA(International Emergency Economic Powers Act)를 의역하면 ‘국제적 차원의 비상사태가 발생할 때 대통령에게 경제적 권한을 위임하는 법률’이다. 이 권한의 발동엔 ‘사전조사’ 따위가 필요 없다. 외국이 미국에 무력도발을 가했는데(비상사태), 한가하게 조사나 할 것인가.대통령이 ‘지금은 국가비상사태다’라고 선포하기만 하면 IEEPA에 규정된 권한들을 발동할 수 있다. ‘도발국과의 수출입 금지’ ‘달러 송금 및 결제 차단’ ‘미국 내 도발국의 자산 동결’ 등이다. 이 법률에 관세 관련 조항은 없다. IEEPA는 애당초 통상 관련 법률이 아니라 전쟁·테러 등 도발국을 ‘제재하기 위한 법’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러시아·이란 등이 이 법으로 제재받은 바 있다.
트럼프는 IEEPA를 통상법처럼 사용하기 위해 두 단계의 ‘논리적 점프’를 감행했다. 첫째, 적국의 도발이 아니라 미국의 만성적 무역적자를 국가비상사태로 선포한다. 둘째, IEEPA의 ‘도발국 제품 수입금지’ 조항에서 ‘수입을 막을 수 있다면 관세율 인상도 당연히 가능하다’는 논리를 추출한다. 대미 무역 흑자국들은 은연중에 미국의 적국이나 테러범 취급을 받은 것이다.
또한 IEEPA는 관세 자체를 언급하지 않으니 ‘사전조사’ ‘관세부과 기한’ ‘관세율 상한선’ 따위의 조항도 없다. 트럼프가 선포 즉시 상호관세를 시행하고 ‘네 행위를 봐가면서 관세율을 부과할게’라며 우방국들을 압박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1977년의 미국 의회는 ‘특정한 적국을 경제적 수단(거래 금지 및 달러망 퇴출)으로 정밀타격’하는 권한을 대통령에게 위임했다. 2025년의 트럼프는 이 권한을 전 세계 모든 나라에 무제한적 관세를 부과하는 ‘포괄적 통상정책 수단’으로 변질시켰다. IEEPA를 관세부과용 몽둥이로 휘두른 것은 역대 미국 대통령 중 트럼프가 처음이다. 그에게 IEEPA는 ‘자유’였다.
지난 2월20일 미국 대법원 판결의 핵심은 이렇다. ‘IEEPA의 수입 규제 문구만으로 대통령이 다른 나라에 제멋대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받았다고 볼 수는 없다.’ 대법원은 행정부가 의회의 권한을 과도하게 침해했다며 IEEPA 기반 관세들에 위헌 판결을 내렸다.
트럼프는 격노했다. ‘대법관들이 해외 불순세력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음모론까지 토해냈다. 트럼프 팀은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부터 ‘대안적 법 기술’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IEEPA 기반 관세는 받지 못하게 되었으나 어떻게든 관세 수입을 유지해야 했다. 그 방법들을 대법원 판결 당일 낸 백악관 팩트시트에 고스란히 담았다.
팩트시트는 우선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나라의 모든 물품에 2월24일부터 10%의 임시 관세를 부과하겠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로부터 단 몇 시간 뒤에 임시 관세를 15%로 5%포인트나 올리겠다고 말했다. 단 1%의 관세 수입도 포기할 수 없다는 트럼프의 강박이 엿보인다.
이 임시 관세의 법적 근거는 1974년에 제정되었으나 단 한 번도 시행되지 않은 무역법 제122조다. ‘미국이 국제수지 문제로 심각한 국가적 위기 상황에 처하는’ 경우, 대통령의 권한으로 수입을 규제할 수 있다. 관세율 상한이 15%에 불과하며, 부과 기간도 150일(7월24일까지)에 그친다는 것은 결점이다. 그러나 122조에는 엄청난 장점이 있었다. ‘사전조사’와 ‘의회 승인’을 요구하지 않으므로 즉각(2월24일) 시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트럼프는 하루라도 관세를 받지 못한다면 울화가 치밀어 견딜 수 없는 체질이다.
그러나 지금의 미국이 과연 무역법 122조의 발동 조건인 심각한 ‘국제수지 위기’에 처해 있는가. 팩트시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2024년 말 기준 미국의 순(純)대외채무는 26조 달러로 미국 GDP의 89%에 달한다. 미국의 대외채무가 오늘 당장 만기를 맞는다면, 미국은 연간 경제 생산의 89%를 내놓아야 할 판이다.”
거시경제학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실소를 금치 못할 문구다. 순대외채무는 ‘미국이 다른 나라에 투자하거나 빌려준 돈’에서 ‘다른 나라가 미국에 투자하거나 빌려준 돈’을 뺀 수치다. 그 액수가 마이너스 26조 달러라니, 그리고 모든 채권자가 어느 날 갑자기 동시에 채무상환을 요구한다니, 섬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미국의 모든 대외채무 만기가 한날한시에 도래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10억 분의 1이나 100억 분의 1? 더욱이 미국 대외채무의 대부분은 미국 정부가 상환할 필요가 없다. 예컨대 당신이 1000달러 상당의 애플 주식을 산다면, 미국의 대외채무는 1000달러 늘어난다. 현대차가 미국에 공장을 짓기 위해 수백억 달러를 투자한다면 미국의 대외채무는 수백억 달러 증가한다. 이걸 미국 정부가 갚을 필요는 없다.
팩트시트에 이런 황당한 문장이 들어간 이유는 뭘까? ‘미국이 국가부도 직전 상황’이어야 122조를 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송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소송이 제대로 시작되기도 전에 임시 관세의 부과 기간인 150일이 지나갈 것이다.
이 150일 동안 트럼프 행정부는 전 세계의 숨통을 영구적으로 조일 거대한 사냥을 준비할 심산이다. IEEPA로 구축했던 관세장벽을 더 높이 위협적으로 재건할 것이다. 2월20일 팩트시트를 읽어보자. “대통령은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무역법 301조 권한을 발동해 미국의 통상 활동에 부담을 주거나 제약을 가하는, 외국의 불합리(unreasonable)하고 차별적(discriminatory) 행위와 정책, 관행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트럼프의 계획은 다음과 같다. 150일 동안에는 전 세계로부터 15% 임시 관세를 포괄적으로 징수한다. 이 기간 USTR은 다른 나라들(특히 무역흑자국)에게 ‘301조 조사’를 시행해 고율 관세 추징 근거를 잡는다. 임시 관세의 시행이 끝나는 7월 말부터 ‘301조 관세’를 받는다. 무역법 122조는 IEEPA에서 무역법 301조로 넘어가는 징검다리다.
301조에 따르면, 무역 상대국이 미국에 불리한 불공정 행위를 하는 경우, 대통령은 해당국에게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관세부과 기한은 무제한이다. 관세율도 얼마든지 올릴 수 있다. 트럼프가 좋아할 만하다. 그러나 결점도 있다. USTR의 사전조사가 필요하고, 이에는 상당한 기간(통상적으로, 한 국가의 한 사안에도 6개월~1년)이 걸린다. 특히 301조는 특정 국가(주로 중국)의 특정 행위(지적재산권 탈취)를 콕 찍어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는 용도였다. IEEPA처럼 세계 모든 나라를 대상으로 ‘포괄적 관세장벽’을 구축하는 수단으로는 ‘상상’된 적이 없다.
그러나 2월20일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 명의의 성명서를 보면, 트럼프가 301조의 용도를 완전히 바꾸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01조에 따라 여러(several) 조사들을 개시해서, 수많은 무역 상대국들이 미국의 통상에 대해 저지르는 부당하고 불합리하며 차별적인 행위·정책·관행들에 대응할 것이다. 이 조사들은 대다수의 주요 무역 상대국(most major trading partners)에 대해 시행할 것이다.”
이 성명에서 주목할 단어는 ‘여러 조사들’ 그리고 ‘수많은’ ‘대다수’의 ‘무역 상대국’이다. 특정 국가의 특정 관행이 아니라 대다수 주요국들의 모든 경제제도를 ‘싹쓸이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조사 범위가 매우 넓다. WTO 규범이나 무역협정을 위반하지 않아도 미국이 ‘불합리하다’고 판단하면 301조에 따른 조사를 받을 수 있다.
팩트시트 및 USTR은 EU 일부 국가와 캐나다 등이 시행 중인 디지털세를 301조 조사 대상으로 꼽는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이 나라들에서 발생한 수익을 다양한 기법으로 빼돌려 법인세를 거의 내지 않았다. 이에 현지 매출 2~3%의 디지털세를 매기자 ‘미국 플랫폼 기업에 불이익을 주는 불합리하고 차별적 제도’라며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쿠팡에 대한 조사 역시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 대우’로 301조의 난사 범위에 포함될 수 있다. 건강보험의 ‘약품 가격 통제’는 ‘미국 제약사에 불이익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아시아 국가들이 비용을 아끼기 위해 해양오염 규제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수산물을 싼 가격으로 수출해서 미국 어업을 망쳤다고 한다. 자국에 필요한 수준 이상으로 생산한 제품을 수출하는 행위(산업 과잉생산)도 301조 조사의 대상이다. 산업 및 농업에 대한 보조금도 포함된다. 과거의 301조가 특정 국가의 특정 제도를 정밀 겨냥한 라이플(소총)이었다면, 트럼프 2기의 301조는 전 세계 국가들의 경제제도 전반을 한꺼번에 난사할 수 있는 기관총이다. 미국의 포괄적 관세장벽을 다시 구축하겠다는 의도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가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REUTERS
결국 상황은 지난해 여름으로 돌아갔다. 당시 미국의 우방국들은 IEEPA 기반 상호관세를 낮추기 위해 경쟁적으로 트럼프에게 굴종했다. 2월24일부터 150일 동안에는 301조를 피하기 위해 다시 고개를 조아려야 한다. 301조는 IEEPA보다 더 악랄하다. IEEPA의 발동 조건은 미국의 내부 상황, 이 경우에는 만성적 국제수지 적자였다. 301조는 다른 나라들의 경제제도를 건드린다. IEEPA 기반의 압박이 ‘관세를 올리거나 대미 투자를 바치거나’였다면, 301조는 ‘고율 관세를 받거나 너희(무역 상대국)의 국내 제도를 우리(미국)에게 유리하게 고치거나’를 요구할 것이다. 당장 한국 정부가 첨단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주는 보조금이나, 국내 시장을 건전하게 유지하기 위한 공정거래 규제마저 미국에겐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301조 관세에는 부과 기한도 관세율 상한선도 없다. 트럼프 행정부는 다른 나라들의 경제주권을 희생물 삼아 ‘글로벌 구조조정’을 겨냥한 것으로 읽힌다.
‘법적 근거 없지만, 갈취는 계속할게’
팩트시트에 등장하지 않는 대량살상용 무기가 하나 더 있다. 1962년에 제정된 무역확장법 232조다. ‘특정 품목의 수입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될 때, 대통령이 수입량을 줄이거나 관세를 매길 수 있다. 이른바 ‘품목별 관세’다. 미국 상무부의 사전조사가 필요하지만 관세부과 기한이나 관세율 상한은 없다. 트럼프는 이미 철강·알루미늄·자동차 및 부품·반도체와 구리까지 ‘미국 제조업의 근간이자 안보 자산’이라며 232조를 적용해서 관세율을 대폭 올렸다. 문제는 트럼프가 마음만 먹으면 232조에 해당되는 품목을 무한정 늘릴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중도보수 성향 조세·경제 정책 싱크탱크인 ‘택스 파운데이션(Tax Foundation)’이 대법원 판결 당일 낸 자료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다양한 품목을 대상으로 232조 조사 12건을 진행 중이다. 어느 날 갑자기 짐작도 못한 품목이 ‘미국 안보를 위협하는 물품’으로 간주되어 ‘관세 폭탄’을 맞을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라면 무역법 301조로 만족할 만한 실적(?)을 올리지 못하는 경우, 무역확장법 232조 품목을 늘려 관세 수입을 확보하려고 시도할지도 모른다. 트럼프에게 무역확장법 232조는 언제든 새로운 품목을 추가해 관세를 무한 리필할 수 있는 ‘요술 방망이’다.
지난해 7월30일 무역 합의를 타결한 직후, 트럼프와 만난 한국 정부 협상단. ⓒ백악관 엑스
우방국들은 가만히 있어야 할까? IEEPA가 불법화되었다면 이를 빌미로 체결한 무역 합의로 떠맡은 대미 투자, 미국 에너지 수입 등의 의무를, 한국과 일본과 EU가 순순히 이행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백악관은 우방국들의 반발을 견제하기 위한 협박용 문구를 2월20일 팩트시트에 넣어두었다. “미국은 상호 무역과 관련된 법적 구속력 있는 합의들을 계속 준수할 것이며, 교역 상대국들도 같은 태도를 보이길 기대한다. (···) 향후 관세부과의 법적 근거는 달라지겠지만(편집자 주: IEEPA에서 예컨대 무역법 301조로) (···) 미국의 정책 기조 자체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 대법원 판결을 핑계로 대미 투자를 철회하거나 액수를 깎으려 시도한다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으름장이다. 무역법 301조와 무역확장법 232조라는 강력한 무기가 남아 있지 않은가. 법적 근거가 무너졌는데도 상대방에 대한 갈취를 이어가겠다는 이 뻔뻔함은, 트럼프 행정부가 우방국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IEEPA는 무너졌지만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건재하다. 트럼프는 무역법 122조로 벌어들인 시간 동안 무역법 301조 조사로 고율 관세의 법적 근거를 다시 구축하고, 필요하다면 무역확장법 232조로 품목별 장벽을 확대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놓았다. 문제는 관세뿐만이 아니다. 트럼프는 우방국들의 산업구조와 제도 변경까지 요구하는 새로운 통상 질서를 목표로 삼고 있는 듯하다. 이제 미국의 우방국은 각자도생의 굴욕을 멈춰야 한다. 반도체, 방산 부품 등 자신들이 틀어쥔 첨단 공급망을 어떻게 공동의 지렛대로 만들어 트럼프를 견제할지 서늘하게 계산해야 할 때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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