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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테이션가방 [단독]“배엔 한 달치 식량뿐”... 호르무즈 해협 우리 선원 지원책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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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행복이13
    댓글 0건 조회 7회 작성일 26-03-07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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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테이션가방 “호르무즈 해협 인근 해상에 포탄이 떨어지고 있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승조원도 있습니다.”
    박상익 SK해운 노조 본부장은 3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현재 중동에 있는 조합원들이 밤에 포격을 목격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정부가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과 대책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이 연일 격화되면서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 머물고 있는 우리 국적선 승조원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현재 이란 혁명수비대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대해 공격을 감행할 것을 밝히고 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현재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 머물러 있는 우리 국적선은 40척이다. 정부는 국내외 선박에 탑승한 우리 국적 승조원에 대한 신원을 파악 중이다.
    국내 1위 해운사인 HMM 소유의 컨테이너선 1척과 유조선 2척도 호르무즈 해협 내에 머무르고 있다. 에이치라인 해운 소속 선박 3척은 이달 말 안에 호르무즈 해협에 도착할 예정이다. 정해진 항로에 따르면 해협을 지날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 우리 선박 피해는 보고되지 않고 있다.
    현재 해협 인근에 머물고 있는 승조원들은 국내 선박업체들과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승조원들은 이란의 공격이 소강상태로 보이지만 포격이 언제 시작될지 몰라 두렵다고 호소하고 있다는 게 선박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전정근 HMM 노조위원장은 “며칠 전만 해도 포격 잔해로 항구가 엉망이 됐다는 말이 있었는데 지금은 일부 작업이 진행되는 것으로 전해 들었다”면서 “컨테이너 작업을 할 때는 원래 ‘쿵쿵’ 소리가 나는데 군사적 마찰 이후로 승조원들은 유사한 소리만 들려도 깜짝 놀라고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김두영 SK해운연합 노조 위원장은 “언론 보도로 다른 나라 선박이 공격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불안해하는 승조원이 많다”며 “해적 등 해상 위협을 이겨냈던 베테랑 승조원들도 이번 건은 다르게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승조원들은 정부가 제대로 된 지침을 주지 않아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공격해올 경우 피해를 최소화할 대피 지역에 대한 설명조차 받지 못했다고도 했다.
    권기흥 에이치라인해운 노조위원장은 “아직 호르무즈 해협에 도착하지 않았지만 향하고 있는 선박에도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며 “당장 9일에 선박 1척이 해협 인근에 진입하는데 그 전에 대책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식량 부족 사태 등도 발생할 수 있다. 대형 선박의 경우 통상 장기간 버틸 수 있는 식량이 충분히 구비돼 있지만, 이미 오랜 기간 운항한 선박은 자칫 한정된 식량과 식수로 버텨야 할 수 있다.
    박 본부장은 “현재 남은 식량으로는 한 달도 버티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선박도 있다”며 “우리 선박이 타격 대상이 되지 않는 지역으로 강제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해양수산부는 이날 비상대비반을 비상대책반으로 격상했다. 김성범 차관은 “우리 승조원과 선박의 안전 확보에 중점을 두고 비상 대응 체계를 유지할 것”이라며 “중동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에 대비해 해당 선박과 승조원 안전 관리, 지원 방안 강구 등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김씨의 상태를 보면 성폭력 (피해) 정황이 강하게 의심되지만, 상태를 구체적으로 확인했을 것이 분명한 친언니의 진술을 (수사기관은) 확보하지 않았다. 피해자의 몸에 남아있었을 성범죄 증거를 수집할 기회도 놓쳤다.”
    법원은 지난달 13일 이같이 밝히며 ‘부산 돌려차기·성폭행 사건’ 피해자 김진주씨(필명)에게 국가가 1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국가의 잘못을 법원이 인정한 건데요.
    일각에서는 이 금액이 김진주씨가 겪은 고통에 대한 배상으로 충분하냐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부실수사로 김씨는 성폭력 피해자 보호 제도의 적용을 받지 못한 채 가해자 이모씨의 위협에 노출됐고, 이씨가 1심에서 낮은 형량을 선고받는 것도 답답한 마음으로 지켜봐야 했습니다. 이러한 고통에도 26년째 바뀌지 않은 배상액 기준 등 제도적 한계로 피해자의 권리는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데요. 오늘 점선면이 짚어봤습니다.
    부산 돌려차기·성폭행 사건은 2022년 5월 30대 남성 이씨가 부산 서면에서 혼자 귀가하던 김진주씨를 뒤따라가 오피스텔 1층 복도에서 폭행하고, 기절한 김씨를 폐쇄회로(CC)TV 사각지대로 끌고 가 성폭행하려 한 사건입니다.
    2심 재판부는 이씨가 무방비 상태이던 김진주씨의 머리를 의도적·반복적으로 가격했고 외관상 위중한 상태였던 피해자에게 성폭력을 행사한 점에서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대법원도 받아들였습니다. 이에 이씨는 2023년 9월 대법원에서 성폭력처벌법 위반(강간 등 살인)으로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문제는 수사 초기 성폭력 단서가 있었음에도 경찰이 이를 충분히 조사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씨가 1심에서 살인미수 혐의로만 기소된 이유인데요. 뒤늦게 성폭력 가능성을 알게 된 김진주씨는 범행 증거를 스스로 찾아야 했습니다. 김씨는 2023년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1심 첫 공판 때 검찰이 ‘CCTV 사각지대가 있어 (사건에) 7~8분 정도의 공백이 있다’고 했다”며 “그때 직접 증거를 채취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이씨의 옷에서 김진주씨의 DNA가 검출되면서 항소심은 변경된 ‘강간 등 살인미수’ 혐의로 진행됐습니다. 국가배상 소송의 재판부도 “원고의 반복적인 탄원으로 항소심에서 비로소 공소사실 범죄가 추가됐다”고 밝혔습니다.
    수사·재판 과정에서 김진주씨가 2차 가해·보복에 그대로 노출되는 일도 있었는데요. 초기에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적용되는 제도상 보호를 받지 못했고, 법원이 ‘피해자는 당사자가 아니’라며 공판기록 열람을 거절해 민사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신상정보가 가해자에게 노출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씨가 구치소에서 김씨의 주소와 주민등록번호를 달달 외우며 “죽여버리겠다”고 말하고 다녀 김씨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1심 재판부가 반성문 제출 등을 감형 사유로 인정한 점은 김진주씨가 피해자 권리를 위해 싸우기로 결심한 계기 중 하나였습니다. 김씨는 2023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를 언급하며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겠다는데 왜 판사가 마음대로 용서하나”라고 했는데요. 가해자 사정을 봐주느라 피해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국가의 2차 가해”라는 질타였습니다.
    이는 이번 국가배상 판결에 김진주씨와 시민사회가 한목소리로 환영한 이유였는데요. 김씨는 판결 직후 기자회견에 영상 통화로 참여해 “미래 피해자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판례를 쓰고 싶어서 이 소송을 시작했다”며 “앞으로 저같은 피해자들이 소외당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국가가 잘못을 인정한 만큼 피해자 권리가 보다 적극적으로 보호될 것이라는 기대와 바람이 담겼습니다.
    김진주씨가 피해자 권리를 위해 싸우는 과정에서 이미 변화는 시작됐습니다. 그간 피해자들은 검사나 판사가 허가하는 경우에만 형사재판 기록을 열람할 수 있었는데요.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관련 법이 개정되면서 피해자에게 열람권이 생긴 겁니다.
    제도상 한계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낮은 손해배상 액수인데요. 김진주씨 측 대리인단장인 오지원 변호사는 점선면과 통화에서 “학교폭력으로 평생 갈 수 있는 트라우마가 생겨도 위자료는 700만원밖에 안 나온다”며 “전반적인 위자료 수준이 너무 낮다 보니 1500만원이면 만족하게 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이송이 지체돼 숨진 임경빈군의 유족에 대한 국가배상금도 1000만원에 불과했습니다.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액은 판사의 재량으로 결정되는데요. 대법원 판례 등에 따르면 고통의 정도, 피해자의 연령·직업·사회적 지위·재산뿐 아니라 가해자의 고의·과실 정도, 범행 동기, 이후 태도 등 가해자의 사정까지 함께 참작합니다. 이번 국가배상 판결 역시 검찰이 항소심에서 공소장을 변경한 점 등을 감안해 김진주씨가 청구한 배상액 5000만원 중 1500만원만 인정했습니다.
    판사의 재량에 의존하다 보니 배상액이 일정치 않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실제로 5·18민주화운동 피해자·유족들의 정신적 손해에 대한 국가배상 청구권이 2021년 헌법재판소에서 인정된 이후 관련 국가배송소송이 잇따르고 있는데요. 5·18기념재단과 단체에 따르면 배상액이 법원에 따라 최대 4배까지 차이가 났습니다.
    배상액 기준이 달라진 물가 등을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국가배상법 시행령상 기준표에 따르면 정신적 손해배상액의 기준 상한은 1000만원인데요. 이 기준은 1987년 신설 당시 50만원이었다가 1998년 400만원, 2000년 1000만원으로 오른 뒤 26년 동안 바뀌지 않았습니다. 국가데이터처 통계를 보면 그사이 소비자물가지수(2000년~2025년)는 1.85배 올랐고요. 1000만원이면 당시 물가로 짜장면 4000그릇을 살 돈이지만 현재 물가에선 1300그릇만 살 수 있습니다.
    형사배상 제도는 인용률(2024년 28%)이 떨어지고, 가해자에게 민사 손해배상을 청구하더라도 온전히 배상을 받기 쉽지 않습니다. 김진주씨는 이씨를 상대로 제기한 1억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2024년 승소했는데요. 이씨가 배상을 하지 않아 영치금이라도 압류하려면 매번 담당자에게 전화해 잔액을 확인하고, 통장·신분증 사본 등 자료를 팩스로 내야 한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김씨가 받은 배상금은 20만원입니다.
    ‘피해자로 살기에 팍팍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현실인데요.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이번 판결은 형벌권을 독점하고 있으면서 수사를 부실하게 하고 피해자 보호도 방기한 국가에 경종을 울렸다”고 짚었습니다. 김진주씨의 목숨을 건 노력이 아니었다면 국가는 아직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을 겁니다. 잘못이 확인됐는데 아직 국가의 그 누구도 책임을 지거나 사과하지 않고 있고요.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요? 김진주씨는 국정감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법부는 피해자를 철저히 ‘(사법절차를) 방해하는 사람’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아무도 지금은 대한민국의 피해자가 되고 싶어 하지 않으실 겁니다. 반성하고 고치셔야 합니다. 국민들이 대한민국의 피해자가 돼도 억울한 일이 없도록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를 보더라도 입체적으로” 경향신문 뉴스레터 <점선면>의 슬로건입니다. 독자들이 생각해볼 만한 이슈를 점(사실), 선(맥락), 면(관점)으로 분석해 입체적으로 보여드립니다. 매일(월~금) 오전 7시 하루 10분 <점선면>을 읽으면서 ‘생각의 근육’을 키워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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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명아(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는 인터뷰 때 예상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2030여성의 남태령 연대 의미’에 관한 질문에 “농민들이 왜 트랙터 타고 왔는지 아는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당사자’, ‘소수자’의 관점과 입장에서 사건·사태의 근원·근본 문제를 들여다보는 듯했다. 이대남 논쟁, 윤석열의 국체 투쟁과 파시즘, 지방과 대학, 미투와 페미니즘, 차별금지법에 관한 답변도 마찬가지였다.
    “현실에 개입하고 싸우는 무기가 글쓰기”라고 여기는 그는 쓰고, 읽고, 또 공부하는 사람이었다. 또 만나는 사람이었다. 소수자의 투쟁 현장, 또 다른 공부하는 사람들과 함께했다.
    지난 1월 22일 부산 동아대 젠더어펙트 연구소를 겸하는 교수 연구실에서 만났다. <역사적 파시즘 체제의 인종주의와 젠더 정치>(갈무리, 개정증보판) 출간 의미와 함께 여러 이슈에 관한 생각을 물었다. 인터뷰는 3시간 가량 진행했다. 다음은 목차와 일문일답이다.
    -노동자문화예술 연구소 산하 문학예술연구소에서 공부하실 때인 1994년 <작가세계> 신인상 비평부문에 ‘박완서 문학 연구 - 억척 모성의 이중성과 딸의 세계의 문학적 의미’가 뽑혀 등단하셨는데, 30년이 지났네요.
    “아프꼼(어펙트·affect+꼬뮨·commune) 래인커머(來人commer)를 제일 오래 한 친구가, 그 친구도 <작가세계>로 등단했는데, 늘 저한테 30년 되면 문단에서 원로 공로상 같은 거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맨날 저를 놀리거든요(웃음). 너무 오래된 사람이라고요. 오래됐죠.”
    -아프꼼 구성원들끼리는 왜 ‘래인커머’로 부르는지요.
    “대안 공간들에선 이름의 위계가 발생하잖아요. 누구는 운영자 누구는 소장 하는 식으로요. 게다가 저는 교수이기도 하다 보니까 그런 이름을 붙이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죠. 적어도 여기서 다른 몸을 만들려면 동등한 의미의 이름을 부여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아프꼼 멤버가 아닌 사람들을 초대하면 주인과 손님의 구분이 생기고 하니까, 똑같이 활동하지 않아도 뜻이 맞거나 원하면 래인커머가 되는 거죠. 그냥 다 래인커머예요.”
    -‘삶-연구-글쓰기의 인터페이스’를 추구하는 대안연구모임 아프꼼’을 2011년 만드셨는데요.
    “부산에 오기 전에도 ‘문예연’이나 ‘수유+너머’ 같은 대안 인문학 운동 단체에 있었기 때문에 인문학 운동의 연장에서 대안 단체를 만들려고 한 거죠. 꼭 대학이 아니어도, 평생 계속 공부하면서 지역사회에서 나름대로 대안을 만들고, 살아가는 기반을 다지려고 했어요. 아프꼼을 하면서 느낀 건, 부산의 경우 당시에도 인문학 단체들은 많지만, 다들 각자가 소수고, 각자가 고립됐어요. 네트워킹하기 어려운 구조였죠. 아프꼼도 그랬는데, 제가 부산 외부에서 온 사람이라는 이유도 크지만 부산에서는 특히 대학 사회에 서로 연결해 네트워크를 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구조가 있는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대안 운동을 하는 분들의 경우에는 운동 단체를 전유하려는 교수들에게 배타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경험도 현실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대학은 내부적으로 폐쇄적이고, 대학 바깥은 그 나름으로 폐쇄적이 되다 보니, 대안 인문학 단체도 소수의 뜻 맞는 사람들끼리 계속 추진하는 식으로 되다 보니까 모든 단체가 힘들게 운영을 하더라고요. 대학의 안과 바깥의 경계를 너무 견고하게 생각하지 말자는 의미로 대학 안에서도 안정적이고, 대안적인 제도로서의 연구소를 만들어 보자고 해서 대학 바깥에서 진행하던 연구모임 아프콤을 대학 연구소와 결합해서 운영했습니다. 이전 운영하던 연구소가 없어져서 2018년 젠더·어펙트 연구소를 다시 만들었어요.”
    권명아 교수 연구실은 젠더·어펙트 연구소 공간을 겸한다. 권명아는 “한국연구재단 프로젝트를 6년간 했는데, 지원 조건이 학교 내 반드시 별도 연구 공간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8월 30일 이 프로젝트가 끝나면서 공간을 바로 반납해야 했다”고 말했다. 대학원생들과 연구소 학생들이 함께 쓴다. 흔히 교수 책상을 두는 창가 쪽 공간에 공용 리클라이너가 놓였다.
    -교수님의 대표 학술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정동’ 연구는 어떻게 하시게 된 건가요.
    “책 이야기부터 할게요. <음란과 혁명>(책세상, 2013)은 근대에서 최근까지 거의 200년을 다뤄요. 예를 들면 1950년대 무작정 상경해 종로 3가에서 일 찾다가 못 찾아서 범죄를 저지르고, 또 굶어서 죽었다는 여성들이 ‘이브의 범죄’라고 해서 신문에 나요. 그런 식으로 비슷하게 계속 등장하던 사람들이 사실은 어느 날 정치적 주체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날이 온단 말이죠. 변영주 감독의 영화 <화차>도 원래 일본 영화지만, 사람을 죽이고 신분을 도용해 살아가는 하층 계급 여성 이야기죠. 노동자랑은 또 다른 의미에서 200년이 지나서야 정치적 주체로 인정받게 되는 거죠. 조직화하지 않은 부랑자들 같은 경우도 비슷해요. 용산 참사 전인 1990년대 만 해도 전국 철거인연합회 같은 조직은 민주노총에서 쫓겨나기도 했거든요. 말하자면 노동자성을 인정받거나 정치적인 주체로 받아들여지지 못했죠. 1990년대 논쟁도 있었어요. 실제로 당시 민중 집회 때 참여한 분들 중 조직에 속하지 않던 일부 사람들을 집회의 정치성을 훼손하는 ‘부적절한 자들’로 간주했어요. 집회 때 술을 먹고 참여하거나 소란을 피웠다는 게 이유였죠. 그분들을 쫓아냈고, 이에 대한 비판과 논란이 있었습니다. 당시 집회 주최 측을 비판한 사람들이 상당히 조직적으로 비난을 당했어요.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보자면, 그때 그렇게 ‘부적절한 자들’이라고 집회에서 쫓아낸 방식은 잘못된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우리의 인식도 바뀌어야 하는 거죠. 그러니까 그때는 ‘정치적 주체’로 인지조차 하지 못한 존재들에 대해, 지금은 정치적 주체로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듯이, 이 행위자들의 정치적 힘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과거 어떤 시점에도 분명하게 존재했고, 또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 정치적 행위자성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이 정치적 행위자성과 앎의 관계는 단지 의식의 변증법으로 환원되지 않는 영역입니다. 무엇보다 200년 사이를 오가며 자료들을 보면서 이런 잠재된 힘들을 어떻게 지식의 언어로 만들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하다가 정동 연구를 만났어요. 역사 속의 그 힘들, 뭔가 언어로 환원될 수 없는 그 저변의 사라지지 않는 힘, 기존의 지식으로는 이해하지 못하고 해석하지 못하는 힘이 들뢰즈나 스피노자가 얘기하는 어펙트와 맞닿아 있었어요. 이 연구를 하다 보니, 이게 보편적인 게 아니라 젠더화 되어 있더라고요. 성별, 계급, 인종, 연령도 마찬가지고요. 소년과 여성 사이에도 달라지는 차이가 있는데, 스피노자나 들뢰즈 이론으로 해결을 못 해주더라고요. 그러다 어펙트를 소수자 이론과 결합한 연구를 찾아가게 된 거죠. 사회에서 지적으로 다룰 수 없는 집단들 예를 들어 소수자의 힘들을 어떻게 이론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이 젠더·어펙트 이론이 된 것이죠.”
    - 지난 1월 11일 <역사적 파시즘 체제의 인종주의와 젠더 정치> 갈무리 강연 때 “연구자들이 다 죽지는 않았잖아요”라고 말씀하신 게 기억에 남습니다. 학술과 담론의 위기 또는 소멸 속에서 계속 연구와 대안운동을 하겠다는 의지를 말씀하신 듯한데요.
    “지방대 교수로 살면서 갖게 된 감각의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제가 대학교수고, 지방대 교수 중에는 학과가 없어진 경험을 하는 분들도 있기에 엄살을 부리려는 건 아닙니다. 제가 서울에 있다가 지방대에 와서 양쪽을 다 경험하면서 서로 다른 차이를 감각하게 되었다고 표현하는 게 더 좋겠어요. 대학 내부에 서울과 비수도권 대학 사이에 낙차가 너무 커지고 있고, 특히 규모의 경제가 비교가 안되게 되어서, 같은 대학 구성원으로서의 경험치가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고 보입니다. 연구재단 지원 역시 규모의 경제를 중심으로 만들어져서 대형 프로젝트도 지방 사립대에는 오지도 않을뿐더러 우리는 그런 규모의 경제를 감당할 수도 없거든요. 대학원생이 몇백 명 되는 데라야 가능한 거죠. 국립 사립을 가리지 않고 지방대는 전업 연구자 자체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저희는 겨우 전업 연구자를 매년 배출하고 있지만, 정말 이례적인 경우입니다. 그리고 이런 차이를 단지 부정적인 결핍으로 간주하지 않고, 지방대 혹은 지방 사립대가 처한 조건에서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조건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그 조건에서 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고, 그 조건에서 무언가를 해나간다는 그 존재 방식 자체가 가치를 지니도록, 다른 길을 만들어야 했고, 그렇게 이 길을 가게 되었는데요. 이런 생각을 정리하기까지도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애초에 그런 목표를 세운 것은 아니었어요.
    - 지방대 상황이 계속 나빠진 듯합니다. 동아대에 오신 지 19년째인데요.
    “저도 서울에서 학교를 나와 2007년 동아대 취직을 하면서 부산에 이주한 사례거든요. 부산에 연고도 없었어요. <역사적 파시즘> 처음 낼 때도 지역적 차이를 계속 고민했죠. 서울에만 거주해 왔기 때문에 지역적 차이나 지역을 개념, 지식으로만 알았어요. 소수자 연구를 하는 사람으로서 한계라고 항상 생각해 왔어요. 지역에 와서 현장 연구 기회를 얻게 돼서 기뻐했고, 또 열심히 작업들을 했고요. 부산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지방이나 지방대의 상황이 지금 같지 않았죠. 지금 같이 지방소멸론 같은 게 있지도 않았고요. 부산을 포함해 영남지역들은 프라이드도 강했고요. 부임 직후부터 구조조정이 시작되어서 이른바 지방대학의 좋았던 시절을 저는 별로 경험하지는 못했습니다. 매일 혁신안 내고, ‘상시적 구조조정’ 같은 말을 듣고, 눈앞에서 다른 여러 학과가 처참한 방식으로 폐과되고, 학생 모집 중단되는 거를 계속 보아왔지요. 모든 상황이 급변했죠. 같은 학교라도 구조조정을 겪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학교 안에서도 과에 따라서 안정감이나 학생들 상황이 다 달라지거든요. 특히 인문사회 계열들이 집중적으로 공략을 받으면서 학교 자체가 전반적으로 좀 이상해지게 된 거죠. 그리고 이게 참 역설적인데 부산은 매우 큰 도시잖아요. 부산이 힘들다고 하면 (서울, 수도권 외) 다른 지역에서 ‘말도 안 된다’고 얘기할 텐데, 대학 구조조정이 유독 심각했던 것은 부산이 처한 상황과 관련됩니다. 우선 산업적 기반이 붕괴했어요. 그다음 부산에 대학이 15개가 넘거든요. 많은 대학이 있다 보니까 지방대 구조조정 여파에 크게 영향을 받은 거죠. 진보정권에서도 균형 발전을 위한 지원이나 지역불균형을 억제하는 일련의 정책이나 지침을 중앙정부에서 없애버렸습니다.”
    - 예를 들어주신다면요.
    “학생들이 대학 들어갈 때도 수도권과 지역에 어느 정도 인재를 안배하는 제도가 없어졌죠. 수도권 대학은 몇 명 이상 받지 못하게 한다거나, 학교 선택 때 서울에 한 개를 하면 지역 대학도 선택하게끔 하는 제도들이 없어졌죠. 성적 우수 학생이 지역 대학 지원하면 장학금을 주거나 학교에 어드밴티지를 주는, 유인책들이요. 다 없애버리니 서울로 일단 다 지원한 다음에 거기 떨어지면 지역으로 돌아오는 입시 구조를 만들어 버렸어요. 이것도 최근이고요. 유학생들도 수도권에 집중되지 못하게 일정 숫자 이상 못 뽑게 하는 제도도 있었는데, 그것도 풀어버린 거죠. 부산도 위기에 몰렸어요. 구조조정이 일상화된다는 삶이 어떤 것인지는 사실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르잖아요.”
    - 정규직 교수인데요.
    “제가 정규직 교수라 불안정하지 않다라고 해도 일상화된 구조조정 속에서는 언제나 불안정한 상태로 살아야 되는 거죠. 한겨레 칼럼 처음([야! 한국사회] 무상급식과 유턴 정치, 2014년 11월20일자) 쓸 때 지방을 서울로 유턴하기 위한 반환점 정도로 생각하는, 책임감도 없는 교수와 정치인 집단을 비판을 했어요. 그때만 해도 공적 책임감이라는, 한국 사회에서 교수들이 공적인 의미에서 존중도 받으니, 연봉 더 많이 준다고 대학 옮기는 건 안 되지 하는, 표면적인 합의는 있었죠. 이제 지방대가 불안정한 상태가 되니까 사람들이 꼭 연봉 문제가 아니라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서 당연히 옮겨야 하는 구조가 됐고요. 되돌이킬 수 없게 된 거죠.”
    -여러 참사도 연구하셨는데, 제주 항공 참사는 정동의 결이 조금 다른 듯도 한데요. 참사가 지방에서 발생한 점도 영향을 끼쳤을 듯하고요.
    “지역 공항들이 희화화가 많이 되죠. 그런데 강원도 같은 곳도 수요가 없는 공항들이 있지만 무안 공항같은 공격을 받지는 않았어요. 예를 들어 ‘고추 말리는 공항’이라고 것도 한 정치인이 말하면서 퍼진 거죠. 저 역시 참사 초기에 이 사태를 무안 공항 참사가 아니라 제주항공 참사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비상계엄 여파로 (상대적으로 더 묻힌 것도 있고요). 지역 이슈는 그래요. 가장 먼저 휘발됩니다. 한국 사회는 이제 사람들의 죽음에 크게 반응하지 않아요. 이게 구조적인 거죠. 이렇게 (인터뷰하러) 와주셔서 감사한 게 서울 매체가 부산에 오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죠. 서울에서 일하기도 바쁘니까요. 그런데 지역 미디어가 너무 약해졌잖아요. 파급력도 없고요. 지역 신문은 말할 것도 없지만 방송도 매체 파워가 세지가 않아요. 요즘 너무 쇠락했어요. 지역방송 지원도 깎이고요. 지역 이슈를 계속 지속하는 미디어 환경이 안 되니까, 빠르게 사라지는 거죠.”
    - 여성신문 기고([새정부에 바란다]성평등 정책, ‘여가부 업무’나 ‘여성문제 해결’ 아니다, 2025년 6월5일)에서 “지방소멸 정책의 성차별, 연령 차별, 지역 차별을 시정해 ‘성장 비전’과 ‘행복 비전’의 내적 충돌과 모순을 막으려면 국가 비전 전체의 기조를 평등 기조에 따라 다시 구축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신다면요.
    “지방 소멸 지수(소멸 위험 지수)에 대해서는 논문에서도 쓰고 했는데, 조금만 생각해 봐도 문제적인 겁니다. 지방 소멸 지수(소멸 위험 지수)가 만 20~39세 가임 여성 인구를 만 65세 이상 인구로 나눈 값이잖아요. 문제가 되니까 여러 개를 넣었지만 기본은 그렇죠. 그렇게 되면 특정 연령 이상 인구는 비생산 인구, 잉여 인구, 쓸모없는 인구가 되어 버려요. 나이 많으신 분들이 맨날 ‘내가 죽어야지, 젊은 사람들한테 짐이 되고 있다’거나 부산에 대해서 ‘노인과 바다’라고 하는 말이 나오잖아요. 고령화 지표가 부산이 진짜 높기 때문에 이런 차별적인 표현이 미디어에서도 자주 발견됩니다. 영남 지방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가 새로 생긴 거죠. 호남이랑 성격이 다르죠. 영남은 이전에는 기득권 집단이었으니까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호남 이전 문제 논쟁 때 영남이랑 비교하는 이야기도 많았는데, 영남에는 그래도 유관 산업의 산단 인프라가 있지만 호남은 없다가 그중 하나죠, 거꾸로 얘기해 보면 호남에 왜 산단 같은 인프라가 없는지를 물어봐야 되는 거 아닌가요. 호남 차별의 결과잖아요. 박정희가 호남엔 아무것도 안 만들었고요. 2014년 처음 나온 헤이트스피치 관련 논문에서 교통 인프라를 비교해서 지도로 보여드렸거든요. 호남에는 교통 인프라가 거의 없습니다. 박근혜 때도 강원도 통일 대박 하면서, 부산에서부터 강원도까지만 철도 예산을 증액시켰어요. 철도를 엄청 많이 만들어요. 그 지도에 호남은 하얗습니다. 박정희의 호남 차별을 그대로 이어간 것이지요. 박근혜 때까지도 이어졌기 때문에 인프라가 없는 거예요.”
    권명아는 ‘노인과 바다’라는 표현을 두고 “노인도 이제 국립국어원에서는 차별 표현이라고 한다. 그만큼 한국에서는 나이 든 사람들을 이제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여긴다”며 말을 이어갔다.
    “지방 소멸에 관한 정책에 ‘행복’ ‘노인 돌봄’ 같은 표현이 나와요. 쓸모없는 인구로 치부해 놓고 어떻게 존중하는 돌봄이 되겠습니까. 국가 정책에서 지역소멸 정책과 고령 대책은 이른바 고령 인구를 지역 사회와 가족에 짐이 되는 인구로 배치하면서, 더 짐이 되지 않을 정도의 돌봄만 하는 거예요. 거기에 행복이 있습니까? 그 정책에서 말하는 행복도 정확한 의미를 알 수가 없어요, 성장과 행복도 모순되는 정책이죠. 일자리도 맞지 않아요. 일자리가 없는데 뭘 어쩌라는 거냐죠. 부산경남 지역에서는 ‘일자리 미스매치 해소’가 또하나의 정책이 된 것도 오래입니다. 즉 지역에 있는 일자리와 청년이 원하는 일자리가 미스매치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을 세우는 것이지요.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는 없고, 지역 기업에서는 사람을 못 구하고, 그래서 청년들이 지역 기업에 가면 어드벤티지를 주겠다 같은 내용이에요. 청년 취업 정책도 1년 단위 통계치를 높이는 데 치중되어서, 실질적으로 일자리가 아닌, 취업 통계를 만드는 정책일 뿐입니다. 그러니 일자리에 행복 같은 걸 고민하지 않는 정책입니다. 일자리 정책. 청년 실업 정책, 교육 정책이 다 그래요. 취업해야 인간 취급하고, ‘쉼 청년’은 사회의 짐으로 취급하면서 무슨 행복이 가능한가요.”
    -지난해 10월28일 정부의 ‘미등록 이주민 2차 합동단속’ 과정에서 단속반을 피하다가 숨진 유학생 뚜안에 관한 글을 페이스북에 링크하셨던데요. 과에도 유학생이 많은지요.
    “글로컬 사업이 유학생을 받아야지만 점수를 받아요. 예산이랑 대응되는 거예요. 동아대나 부산대는 학생 정원 미달은 아닌데, 입학생들이 줄어들다 보니, 학령인구 감소의 미달 공포 같은 걸 느껴요. 그래서 대학들이 유학생을 더 많이 받으려고들 하죠. 동아대는 이전에는 중국 유학생이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베트남 유학생이에요. 뚜안의 죽음은 남 일이 아니죠. 제 수업 듣는 인원 50명인데, 반이 베트남 학생이에요. 과 특성이긴 할 텐데 여학생이 또 많아요. 이 학생들은 한국의 되게 복잡다단한 상황을 알지만, 여성으로서는 베트남에 돌아가기보다 한국에 있고 싶어들 해요. 그 친구들 처지에서는 한국은 페미니즘도 그렇고 뭔가 빨리 변화하는데, 베트남은 느리다고 여겨요. 그런데 한국에 살다 보면 이주 여성이라서 차별들을 겪잖아요. 그런데도 베트남 학생들은 아직까지는 한국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베트남 학생들은 한국을 선망해서 오고,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진짜 좋아해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도 한국어문학과 특성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한국도 잘 알고, 한국어도 정말 잘해요. 한국어 능력시험 점수도 높거든요. 학기가 지날수록, 처음 입학할 때의 그 밝고 기뻐하던 얼굴이 어둡게 변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옛날에는 많은 선생님이 유학생을 그림자 취급했어요. 유학생들이 공부를 못 따라온다 이런 얘기도 많이 했는데 요즘은 유학생들이 훨씬 더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가 명확해요. 우리 과를 오려고 공부한 학생들이라 진로 준비도 명확하죠. 그래서 가르치는 보람도 있고요. 이 친구들이 한국어 능력도 뛰어나요. 한국어로 훌륭하게 발표도 하고 강의도 해요. 한국 전문가가 된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저희가 K문화 수업도 하는데, 요즘은 한국에만 한국학이 있는 게 아니에요. 베트남의 한국학이 있고 중국의 한국학이 있어요. 각자 그 지역에 맞는 한국학 전문가를 키워야 하고, 우리가 무슨 종주국처럼 생각할 수 없다는 얘기들을 해요. 베트남 학생들이 자신들이 베트남으로 돌아가 한국학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는 모습을 수업시간에 머릿속에 그리게 된다고 해요. 진로에 대해 분명한 목표의식을 갖게 됐다는 얘기들 해요. 그래서 보람이 있어요.”
    - 동남아시아에서 온 학생이나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혐오 문제가 있는데요.
    “이번 출간된 역사적 파시즘 체제의 인종주의와 젠더정치: 젠더사로 보는 전시동원 체제에서 ‘그 시대의 역사적 파시즘은 지금 우리의 현재와 멀지 않고 일상화된 방법으로 우리 안에 내재화돼 있다’고 썼어요. 제일 쉽게 얘기할 수 있는 건 동남아시아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자기도 모르는 채 내면화된 차별 의식입니다. 중국 사람들에 대해서도 비슷하고요. 사실 한국 사람들은 동남아시아 국가나 문화, 언어 상황에 대해 배울 기회도 없고 잘 모르는데 알려고도 하지 않지요. 왜 배울 기회가 없을까를 보면, 일제 강점기에도 그 당시 ‘남방’이라고 부르는 동남아시아에 가본 사람이 거의 한 명도 없을 정도였어요. 일본도 마찬가지였고요, 아프리카 선주민을 야만인이라고 생각했던 그런 상태에서 동남아시아 선주민을 아프리카 토인과 동일하게 생각했고, 동남아시아 사람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인식 구조와 감수성도 만들어졌죠. 해방되고 나서도 교정될 기회가 없었죠. 냉전기 동남아 많은 국가가 공산화되면서 또 만나지를 못했으니깐요. 냉전기에 동남아는 어떤 회로로 한국에 유통되었나는 오래 유행한 ‘동남아 순회공연을 마치고 귀국하신 누굽니다’라는 식의 멘트에 잘 담겨있습니다. 이 표현은 냉전기 외부와 차단된 채 미군의 주둔지를 따라서, 미군에 딸린 부차적 존재로 동남아시아를 순회하고 만나고, 그렇게 돌아와서 한국에서 환영받는, 냉전 문화와 동남아시아와의 조우 장면을 잘 보여줍니다. 냉전기 한국 사람들에게는 미군의 회로를 따라 미군 시선으로 동남아를 만나는 것밖에 없죠.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나오는 것처럼 ‘팝송을 부르는 키 작고 까만 사람들’이라는 식으로요. 냉전 문화를 통해서 구축된 동남아시아에 대한 인식은 ‘미군의 지배 지역에서 짝퉁 영어를 쓰고, 짝퉁 팝을 부르는 작고 까만 원주민들’인 거죠. 공산화된 다른 동남아 국가들은 접촉이 어려워지고, 터부화되기도 해요.”
    권명아는 “위안부 문제랑도 결부되어 있다”며 말을 이어갔다.
    “(최초의 위안부 증언자) 배봉기씨(1914~1991)도 오키나와에서 뒤늦게 발견되는데, 위안부 대부분이 남방전선에 동원된 것이잖아요. 일본 패전 뒤 한국은 위안부만 안 데려온 게 아니라 학병들이나 군속들도 안 데려왔죠. 국가가 버린 것이죠. 일본은 지금까지도 BC급 전범을 다 교섭해서 데려왔고 연구도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들이 수기도 남기고 경험담도 출간했어요. 보상도 해주고 한 거죠. BC급 전범 중에 조선인이 있는 것도 일본에서 연구한 거지, 한국에서는 연구 자체를 못 했거든요. 국가가 구조적으로 구식민지 조선인들을 버린 거죠. 데려와 달라는 논의 자체도 막았죠. 이승만 때인데, 조선에 돌아온 학병들이 남방전선 국가에 남은 학병들을 계속 데려와야 한다고 계속 이야기했어요. 남은 곳이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지의) 공산 진영이기 때문에 그걸 얘기하는 건 공산주의에 동조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치부되면서 잔류한 사람들을 데려오려고 하는 것 자체를 언급할 수가 없게 됐어요. 국가가 국민을 버린 무책임주의의 원점에 놓여 있는 거죠. 그걸 계속 망각한 겁니다. 이승만 정부의 출발점인 거죠. 국민을 버리는 거 한국전쟁 때 한강 다리 자른 것만 생각하지만 이미 그전에 남방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버린 거죠. 데려오는 것 자체를 거부함으로써 계속 국민을 버리는 것에 자기 정당성을 만들어 온 겁니다. 이런 한국 사회의 원점에 놓인 게 남방 전선, 동남아시아이고, 그걸 정당화해 온 게 인종주의에요. 사실과도 맞지 않는 그런 식의 인식, 우리를 우월한 자인 것처럼 만들어 놓은 그런 인식들이 해방 이후 냉전기에 교정될 기회가 없었어요. 그러다 베트남 전쟁을 만난 거죠. 한국인들이 베트남에서 한 짓은 일제 강점기와 이승만 정부 시기의 일들을 빼고는 설명될 수 없는 겁니다. 역사라는 게 한편으로는 무의식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겪지 않았는데, 내가 속한 사회의 무의식으로 남는 거죠. 지금 사람들이 1940년대 남방을 경험한 것도 아니지만 한국 사회에 무의식으로 남아 있는 거예요. 그래서 동남아시아를 만난 적도 없는데 1990년대 이후에 동남아시아 출신 이주 노동자들이 오니까 1940년대 조선인들이 남방에 대해서 생각했던 인식, 감정, 표상이 그대로 반복되는 거예요. 진짜 연구자로서 깜짝 놀라거든요. 이게 역사가 무의식이라고 하는 것을 너무 잘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이게 발현되지 않더라도 무의식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언제나 마주치면 촉발되죠.”
    - 갈무리 강연 때 동남아시아 사람들에 대한 혐오, 차별과 ‘민족주의’ 관련해 잠깐 이야기도 하셨는데 이른바 ‘국뽕’이나 ‘민족주의’는 한국 사회에서 이른바 진보, 보수 다 아우르는 문제 같은데요.
    “민족주의는 모호한 것인데, 관련 이슈가 굉장히 오랫동안 반복되면서 민족주의를 뭔가 단일한 어떤 것으로 보면서 이상한 착각에 빠져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은 이미 민족주의가 꽉 차서 그다음으로 넘어가면 되는가라고 했을 때, 그 꽉 찬 민족주의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있어요. 예를 들어 <환단고기>를 따져보면 민족주의라기보다는 국가주의에 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국가주의가 전유한 민족주의 같은 거죠. 우리가 흔히 주권의 상징으로 논의했던 민족주의도 있죠. 통일 같은 경우도 ‘통일되면 북한에 못 사는 사람들이 내려와서 엄청 골치 아파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리가 명백하게 일제 강점기까지는 하나의 문화권을 이루며 한반도를 점유하고 함께 주권을 향유한 하나의 민족’이라는 사람도 있죠. 위안부 문제를 두고도 많은 사람이 ‘과도한 민족주의 때문에 잘못된 방향으로 갔다’라고 많은 사람이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그 과도한 민족주의는 무엇인지 아무도 물어보지 않아요.”
    -과도한 민족주의 예를 들어주신다면요.
    “해방 후 국가를 건설하면서 위안부를 민족의 더럽혀짐의 표상으로 만든다거나 하는 방식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건 ‘운동’에 의해 주도된 것이 아닙니다. 저도 이런 방식을 한국 국가주의의 여성수난사 서사라고 비판해왔습니다. 국가주의를 비판하는 진영에서 이런 표상이나 재현의 정치를 다른 방식으로 반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운동이 ‘과도한 민족주의’라고 하는 비판은 사실 다른 맥락을 갖고 있습니다. <제국의 위안부>는 이 논리로 모든 것을 정당화했지요. 여기서 대표 사례로 거론된 정대협에 대한 비판은 기존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헤이트스피치의 논리와 경계가 매우 모호합니다. 일본의 역사수정주의는 이러한 일본군 ‘위안부’ 지원단체에 대한 헤이트스피치를 학술의 형태로 격상했습니다.”
    - ‘논리와 경계가 모호하다’는 말을 더 풀어주신다면요..
    “정대협은 기독교 관련 단체거든요. 기독교 여성 지식인들이 시작했어요. 기독교계 통일 운동과도 관련이 있죠. 그 통일 운동의 민족주의는 예를 들면 위안부 피해자 여성들을 더럽혀진 민족의 표상으로 수치스럽게 여긴 반공 국가주의가 전유한 민족주의와 공유하는 지점이 없어요. 물론 기독교계 통일운동에 내재한 민족주의를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 운동 단체가 ‘과도한 민족주의에 근거하고 있다’는 건 사실 일본에서 만들어진 역사 수정주의 공격의 레퍼토리 즉 헤이트 피치 레퍼토리예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주로, 오랫동안 일본 시민사회를 주축으로 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진상 규명 단체에 의해 진행됐어요. 일본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을 지원하던 분들이 대체로 자이니치 분들이십니다. 오키나와의 조선인 위안부 피해자 배봉기씨도 오키나와 총련에서 지원을 받았어요. 즉 일본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지원 단체에 대한 헤이트스피치가 겨냥하는 ‘민족주의’는 공산주의, 종북 세력이라는 뜻이에요. 예를 들어 재특회의 재일조선인을 겨냥한 헤이트스피치의 레퍼토리인 ‘자이니치는 북한에 연결돼 있다, 북한의 스파이다’ 같은 것들인데, 그들이 말하는 ‘과도한 민족주의’는 사실 이 뜻이에요. 북한과의 연루 혹은 공산주의적 지향이라는 점 때문에 비판하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이 헤이트스피치가 말하는 ‘과도한 민족주의’란 레드 퍼지(Red Purge), 즉 공산주의에 대한 학살을 민족주의 비판이라고 얘기하는 거고 그 레퍼토리가 사실 일본에서 만들어진 헤이트 스피치 레퍼토리죠. 이게 한국으로 역수입되었고요.”
    -자이니치 운동은 민족주의 운동 아닌가요.
    “한국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자이니치에게 ‘민족’은 한국과 다르다는 점이 간과됩니다. 이들에게 민족은 빼앗긴 주권, 투쟁을 통해서 구축되고 만들어가야 하는 주권의 상응물이라면 한국은 그렇지 않은 거죠. 예를 들어 자이니치 조선학교가 한복 교복 입는 걸 가지고 한국 사람들이 민족주의라고 얘기하잖아요. 한국 사람들이 명절날 한복 입는 거랑 자이니치들이 한복을 입는 의미는 똑같지가 않아요. 왜냐하면 이분들은 한국이나 북한이랑 일체화되는 게 아니에요. 이분들은 주권으로서의 국가가 없는 상태잖아요. 그래서 1세, 2세, 3세가 되는 거잖아요. 빼앗긴 주권의 이름이 조선이고, 민족인 거죠. 한복은 빼앗긴 주권의 이름이지 한국 옷이 아니라는 거죠. 이분들이 지향하는 운동을 민족주의라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일제 강점기 때 빼앗긴 나라의 이름 혹은 빼앗긴 언어를 조선/조선어라고 불렀던 것과 같은 의미의 식민성의 등가물로서의 ‘민족’, 회복할 주권의 등가물로서 ‘민족’의 의미로 보아야 합니다. 없는 나라, 빼앗긴 주권, 식민지의 등가물로서의 조선과 조선어, 민족이라는 것이죠. 이때 민족이라는 이름도 또 과연 오늘날 ‘국뽕’이라고 부르는 그런 민족인가라고 묻는다면 그 둘은 너무나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주권의 상징적 등가물로서의 민족은 너무 다른 얘기죠. 이런 맥락에서 뭐가 민족주의라고 할 때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죠. 국뽕이라고 부르는 민족주의, 예를 들어 한국 사람들이 일본이랑 축구 경기를 하면 반드시 이겨야 된다라고 하는 건 국가주의죠. 자이니치들이 빼앗긴 주권의 등가물로 생각하는 민족과 아무 관련이 없어요. 진보와 보수 아우르는 건 국가주의 성격이 더 강하죠.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 대한 차별을 보면, 한국 사람들은 돈 많은 나라 사람들은 차별하지 않잖아요. 이런 계보의 차별도 복잡하지만, 이게 다 민족주의로 환원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겁니다. 역사적 경험이 되게 중요한 거죠.”
    - 갈무리 강연 때 말씀하신 “‘제국의 위안부사태’ 전후 형성된 여성 대 민족이라는 대립 구도”를 풀어주신다면요.
    .“기존 운동 단체를 ‘민족주의’라고 비판한 <제국의 위안부>의 문제의식이 확산하고, 다른 방식으로도 강화됐어요. 위안부 문제를 기존의 ‘민족주의’ 주도 세력이 과도하게 장악하고 있다는 문제의식과 반대로 여성학계에서 이를 다뤄야 한다는 내부적인 갈등도 발생했고요. 민족주의가 다 똑같지 않듯이, 이른바 ‘여성’ 연구자도 다 같지 않죠. 여성연구 혹은 페미니즘, 여성학 지향도 내적으로 이질적이죠. 교차성의 문제 제기기도 하지만, 이미 젠더 연구에서 젠더는 성차뿐 아니라 계급, 인종, 지역, 문화적 배경 등의 교차를 통해 구성하고 서로가 서로의 규정 인자로 작동하는 걸로 구축됐습니다.”
    - 중국(인)에 대한 혐오, 혐중 국가주의 분위기도 퍼졌는데요.
    “예를 들면, 윤석열은 왜 중국을 혐오하는가를 보면, 증오 정치와 혐오는 좀 달라요. 혐오는 주관적인 거니까요. 일단은 윤석열 정부가 뚜렷하게 ‘이승만주의’화한 거죠. 이승만이 중국을 진짜로 엄청나게 증오했거든요. 우리가 인해 전술이라고 많이 알고 있는, 장진호 전투에서 유엔군이 철수하면서 1·4 후퇴를 하잖아요. 장진호 전투가 분단의 가장 큰 요인이 됐지요. 장진호 전투 기념식을 군에서 계속했는데, 이른바 민주화 이후로는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윤석열은 취임 후 장진호 전투 기념식에 참석하고, 윤 정권에서 대대적인 선전이 이뤄졌습니다. 그만큼 윤정권의 시계는 한국전쟁 시기로 되돌아간 거죠. 그러니까 중국이 한국의 외교 파트너나 경제적 파트너가 아니라 서로 전쟁 중인 상태의 적대자, 침략자의 자리로 상징과 표상과 의미를 강제로 바꾼 것이죠. 그렇게 의미 변화가 되는 과정에서 중국이라는 적이 우리 안에도 침투해있다는 공포와 적개심을 자극하는 역할을 하는 게 선거 개입론, 스파이담론입니다. 우리 안에 말하자면 적들이 침투해 있다는 거잖아요. 이런 걸 흔히 국체 투쟁이라고 봅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 국가의 신체를 1948년 이후에서 그 기원을 찾으려는 시도, 즉 건국절 논란도 같은 맥락에서 국체 투쟁입니다. 친일 잔재나 통일, 주권 등을 삭제하고요. 국체 투쟁은 파시즘 정치의 대표적인 양태이기도 합니다. 일본의 경우 국체라는 말 자체가 파시즘을 환기한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있지만, 한국에서는 그 맥락을 잘 모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국체라는 말을 안 쓸 뿐 건국절 논쟁이라든가 중국 선거 개입론 등이 전부 다 국체 투쟁이에요. 윤석열은 지금도 극렬하게 국체 투쟁을 하는 거잖아요. ‘중국이 침투했다’라는 건 국가를 하나의 유기적 신체로 보면서 이 신체 안에 적대적인 요소가 침입해서 이 신체가 무너지고 오염되고 있다는 것이잖아요. 무너지기 쉽고 침투당하기 쉬운 존재를 여성 신체로 상상한 표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 혐중 진영과 여성혐오 진영이 동일 집단이거나 같은 메커니즘을 공유하는 문제와도 이어지는 듯한데요.
    “여성을 왜 침투당하기 쉬운 존재라고 생각했는가는 고대에서부터 내려오는 여성 혐오의 역사와도 관련 있습니다. 남성이 여성을 강간하고 하는 것들이 여성의 신체를 적에 의해서 침투당할 수 있는 신체라고 보는 거죠. 임신도 다른 신체가 몸에 들어가잖아요. 여성의 신체가 ‘바디 더블’처럼 몸 안에 여러 가지가 되는 건, 한국 영화 <쉬리>에도 나오잖아요. 쉬리라는 물고기 안에다가 폭탄을 넣잖아요. 영화 <에일리언>도 마찬가지고요. 몸 안에 다른 적대의 신체를 숨기고 있다는 거죠. 이게 냉전기 서사에요.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아이를 품는 것만이 아니라 적도 품는 다는 식으로 국체가 여성화됐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제 남성의 신체는 바디 더블이 못 되잖아요. 안에 다른 신체를 품을 수가 없으니까요. 고전적인 레드 퍼지 서사가 여자 스파이로 나타나는 것처럼 중국에 대한 공포와 차별, 혐오도 국체의 여성화라는 젠더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된 거죠. 국체 투쟁에서 중국인이 우리에게 침투돼 있다라고 하는 것이 국체의 여성화이고, 이 과정에서 국체에 침투한 중국이 절멸되어야 할 뿐 아니라, 여성화 자체가 부정되어야 할 것이 됩니다. 이런 식으로 여성화와 인종화는 분리불가능하게 연결됩니다. 그래서 여성이나 젠더 이슈를 생물학적인 여성에 관한 문제에 국한해서 논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오히려 생물학적 여성으로 보지 않는 게 파시스트들 생각이에요. 윤석열은 김건희를 사랑하잖아요. 그런 여성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에요. 정리하면 윤석열 등 한국의 파시스트들은 ‘국체가 무너진다, 사회가 무너진다’라는 식으로 침투되기 좋은 신체로 ‘국체’를 상상하도록 하는 서사를 작동한 겁니다. 이 과정에서 침투되는 신체로 오래 상상된 ‘여성의 신체성’이 동반됐고요. 국체가 여성화되었으니, 다시 남성화해야겠죠. ‘여가부 폐지’처럼 과도한 여성화 상태를 정화해야 하고, ‘이대남 전략’처럼 신체를 남성화하며, ‘침투한 중국인, 전쟁 상태인 적성 국가 중국’ 같은 내부의 적을 정화해야 하는 거죠. 이렇게 국체의 여성화라는 담론은 사회정화와 젠더적, 인종적 절멸이라는 실질적인 구체적 절멸로 이어집니다.”
    -이재명 정부가 여가부를 성평등가족부로 이름을 바꾸었는데요.
    “남성 역차별 대응 기관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너무 답답하죠.”
    -‘이대남 전략’을 말씀하셨는데, 이대남 논쟁은 어떻게 보셨는지요.
    “저는 이대남 논의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이에요. 논의 자체가 설문조사에서 나온 결과들을 가지고 얘기하는 거잖아요. 20대라고 하는 세대 동질성이나 또 남성이라는 동질성을 본질화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얘기잖아요. 설문 문항도 악랄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여성이 남성보다 더 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하나’ 같은 설문 문항이에요. 이런 문항이야말로 본질주의의 가장 큰 문제를 보여주는 거죠. 이대남을 본질화하고 마찬가지로 여성도 본질화하는 문제가 생겨요. 이들(이대남)도 여성 전체가 차별받는 건 아니고 어떤 여성에 비해 내가 더 차별받는 위치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복잡한 면이 있는 거죠. 이렇게 교차성으로 생각하는데 질문은 본질화된 방식으로 제시되어서 여성 일반이 남성 일반에 비해서 차별받고 있냐라고 물으니까, 답변자는 아니냐라고 대답하게 되겠죠. 설문은 대체로 의도한 답안을 내도록 만들어져 있어요. 설계를 그렇게 하죠. 이런 여론조사는 증거가 필요해서 한 거죠.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서요.”
    -어떤 여론 조사인지요.
    “시사인에서 20대 남자 관련 설문 조사와 그 연장에 있던 2025년 12월 ‘남성 차별 의식에 관한 7년 만의 새로운 대답’(2025 세대·젠더 국민통합 조사,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2025년 11월)인데, 2025년 조사는 나름대로 정교화했다고 했지만 설문도, 방식도 문제가 있습니다. 시사인의 경우 사람들 시선을 끌려고 ‘20대 남성이 이렇게나 반페미니스트다’라는 지표를 제시했지요. 인구의 몇 %가 반페미니스트라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폭력적이죠. 이대남 논쟁이 10년이 넘었기 때문에 그들은 이미 30대가 되었죠. 또 이런 여론조사를 만드는 사람들 거의 100%가 40대 이상의 남성 지식인이잖아요. 남성 지식인들이 20대 남성을 계몽시키는 주체이자 정책 행위자의 헤게모니를 얻고 강화하려는 투쟁의 산물이자 알리바이가 되는 겁니다. ‘봐라 남자들이 다 그런 게 아니라 20대들이 문제야’ 같은 거죠. ‘얘들은 여성에 대해서 적대적이니까 여가부 같은 거 없애고, 여가부 때문에 젠더 갈등이 생기니까, 이들의 역차별 감정이나 이런 걸 잘 아는 우리가 이들을 이끌어야 하니까 우리가 일의 주도권을 잡는 게 젠더 갈등을 피하는 길이다’는 식으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한국같이 계급 차이, 학력 차이, 지역 차이가 심한 사회에서 남성과 세대라는 두 개만을 가지고 동질화할 수 있는 그런 이대남이 정말 한국에 존재하나요. 말도 안 되는 얘기거든요. 부모가 막 어렸을 때부터 돈으로 처발라서 학원 보내고, 서포트하는 사람까지 붙여서 잘 되면 유학 가고 못 되면 서울대 가는 계급, 즉 그런 집안의 20대 남성들 말이죠. 예를 들면 ‘내 아들을 내가 구해왔다’고 말하는 상층 계급 집안의 20대 남성과 자기가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한 번도 아르바이트를 쉬어본 적이 없으며, 똑같은 알바를 해도 훨씬 더 안정적이고 보험도 잘해주니까, 대기업 알바를 하기 위해서 대학에 들어가고, 대학 졸업하고 나서도 정규직 매니저를 너무 하고 싶어하는 20대 남성들을 어떻게 20대 남성이라는 동질성으로 본질화하고 하나로 엮을 수 있냐는 거죠. 너무 억울한 일이죠. 물론 온라인 커뮤니티 같은 데서는 이런 점이 드러나지 않고 적대를 향한 에너지로 동질화돼서 갈 수 있긴 해요. 하지만 이들 누구도 자기들이 같은 공동체라는 생각은 하지 않죠. 어머니가 구해오신 상류층의 20대 남성은 미국의 유튜버와 자신을 동일시할지언정 지방에 사는 하층 계급 20대와 자신을 동질화하지 않습니다. 이대남 담론은 그런 (20대 남성 동질화라는) 환상을 만드는 거라고 저는 비판해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세대 내부의 지역, 계급, 특히 학벌에 따른 위계와 차이를 은폐하는 거죠.”
    - 이전에도 프레시안 이대남을 표적화하는 게 왜 문제인가를 비판하는 글을 쓰기도 했는데요.
    “그때 제시한 논점을 조금 말씀드리고 싶네요. 먼저 담론 프레임 문제입니다. ‘청년 취업 문제’를 오래 논해오고 있는데, 저는 이게 하나의 담론 프레임이라고 비판했는데요. 대기업 중심의 한국 고용 구조에서, 특히나 대졸 신입 사원을 거의 신규 채용하고 있지 않은 대기업의 고용유연화와 이로 인한 고용없는 성장이라는 문제를 은폐하고 청년 문제로 전도시켜버린 것입니다. 그 연장에서 대학 문제로 전도해서 이른바 취업 안되는 학과 구조조정이라거나, 산업수요맞춤형 인재 양성 교육처럼 대학이 기업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지 못한다는 식으로 원인과 결과를 전도시키는 방식입니다. 대기업의 고용유연화에 대해 청년 신규 채용을 정부가 요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 결과 공기업 청년 채용에 집중하게 된 것이 문재인 정부 시기 일입니다. 그렇게 공공부문 청년 채용할당제가 만들어지고,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을 하게 되었지만, 이도 정책 실행 과정에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즉 대기업이 독점하는 구조에서 고용을 유연화하고 청년을 고용 안 하니까 생기는 문제인 것이지요. 이게 어떻게 20대의 문제가 될 수 있나요. 이게 왜 요즘 애들의 문제인가요. 이런 구조를 만들고 손 놓고 있는 기성세대는 다 책임을 면하고, 또 재벌은 이 논의에서 보이지도 않지요. 매우 성공한 담론 프레임입니다. 대기업과 재벌의 고용 유연화에 대해 미디어도 정부도 한마디 못하면서 청년만 탓하는 구조죠.”
    - 정동 연구 차원에서는 어떻게 이어지는지요.
    “정동 연구가 제기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입니다. 밀레니얼 세대의 정치성에 관한 판단 문제입니다. 정동 연구자 브라이언 마수미도 지적하듯이 정동 연구는 기존 좌파 지식인이 밀레니얼 세대를 정치적 열정이 사라진 세대로 보는 환멸에 대해 비판하면서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싸웠는데, 얘네는 정치적인 열정이 사그라들고 무감각해졌다는 거죠. 정동이 쇠잔해서 문제라고 하는 거죠. 한국어로도 번역된 브라이언 마수미 <가상계>(조성훈 옮김, 갈무리)에서도 좌파 지식인들의 시각과 해석이 오히려 보수 반동화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사례로 보여줍니다. 브라이언 마수미의 이론에 대해 저도 비판적인 지점은 있지만, 실제로 정동 연구는 사례 연구이기도 해서 마수미의 사례 연구가 지니는 가치는 높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마수미 비판도 사례에 대한 비판이 아닌 원론적 비판뿐인 것도 징후적이라고 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20대를 겨냥해서 ‘우리가 어떻게 만든 세상인데, 얘네들은 공정, 스펙, 생존밖에 관심이 없고, 세상을 바꾸는 열정이 없다’는 식으로 얘기하고 있잖아요. 정동 이론의 관점에서 정동이 쇠잔하는 것은 곧 죽음이기도 합니다. 즉 살아있는 존재는 언제나 변화, 생성 중입니다. 그러니 어떤 집단이 무감각하다라고 보는 것 자체가 특유의 정치적 해석인 것이지요. 모든 존재는 끝없이 이행 중이라는 거죠. 20대 남성들을 반페미니스트라고 고정시키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영원히 그런 상태에 못 박히는 것인데요. 그런 상태는 해석의 산물일 뿐, 존재 상태가 아닙니다. 이대남으로 불리는 어떤 존재들도 계속 변화하고 있기에 이런 고정화가 오히려 반동화를 촉발하게 됩니다.”
    - 이대남 여론조사 한계는 거의 모든 여론조사의 한계이기도 한데요.
    “여론조사는 20세기에 만들어진 고전적인 사회 조사 방법입니다. 구닥다리죠. 요즘 세계적으로 이런 방식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데는 거의 없어요. 대중적인 쓸모나 제한적인 쓸모만 있는 거죠. 이런 여론 조사는 옛날식 통계 연구의 산물일 뿐입니다. 한국에서 옛날에 사회과학이 주로 통계 기반 사회조사에 치우쳐있었지요. 그 산물이라고도 하겠습니다. 한국이 미국식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하지만 미국 대학에서 나오는 어펙트 연구의 많은 부분이 사회과학에서 나옵니다. 일본도 이런 사회조사 방법이 식민주의라는 비판이 엄청 강했기 때문에 사회조사를 한다는 것 자체에 대해 굉장한 자기비판이 있습니다.”
    -식민주의라는 비판이 무엇인지요.
    “이런 식의 사회조사 자체가 인구를 위계화해 식민화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식의 사회조사로 정책을 한다거나, 어떤 집단이 이렇다고 하면 난리 나는 거죠. 최근 인문과학도 디지털 전환이라고 하지만, 다시 자료 실증주의로 돌아가고 있고, 디지털이라기보다 양적 연구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론조사로 정책을 만들거나 누군가를 평가하고 해석하는 방식은 학계 문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20대 문제 이전에. 지식생산 행위자의 문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살필 필요가 있다고 보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의 지식 제도에 이를 비판할 수 있는 페미니즘 지식 생산 자체가 너무 희소하고 거의 몇몇 개 학과 정도에 한정되어 있는 것을 고민해야 합니다.”
    - 2014년부터 헤이트스피치 소수자 연구 오래 하셨는데요. 소수자와 혐오 문제를 다시 정리해주신다면요.
    “혐오는 주관적인 거죠. 마음속에 있는 걸 어떻게 할 수 없지만 그걸 밖으로 내뱉거나 행동을 하기 시작하는 순간 행동이 됩니다. 증오 정치는 마음의 문제라기보다 행위, 수행의 문제이지요. 한국은 이 증오 정치 대응을 하지 않아 한계를 넘어섰어요. 한국 사회 전반에 증오 정치를 두고 ‘뭐 그래도 되지’라고 하는 분위기가 고착화되어 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주변에서도 느끼는 건데요, 고학력 집단에 소속된 사람들도 중국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를 너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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