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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모르겠네요.2025년 6월17일 촬영한 화성시 아리셀 공장 3동의 모습. 희생자 23명이 발생했던 작년 대규모 화재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시사IN 신선영


휴대폰이 그날따라 너무 잠잠했다. 평소 오후가 되면 큰딸이 ‘오늘은 몇 시에 오냐고 문자를 보내오곤 했는데, 그날 큰딸은 문자를 보지도 전화를 받지도 않았다. 오후에 경기도 화성에서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화성에 큰딸이 다니는 공장이 있었다. 큰딸에게 ‘너희 배터리 공장 아니지? 너네 회사 아니지?’라고 문자를 보냈다. 답장이 없었다. 큰딸은 전화를 꺼놓는 사람이 아닌데 전화기도 꺼져 있었다. 그때부터 머리가 복잡해지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같이 일하던 남편에게 빨리 집에 가자고 말했다. 대학생대출이자싼곳 돌아가던 길에 자동차 타이어에 펑크가 났다. 타이어를 교체하고 불이 났다는 공장에 찾아갔다. 유가족이냐고 묻는 소방관에게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저 아이가 그곳에 있는지만 확인하고 싶었다. 공장 안으로 들어가니 희생자 명단이 나와 있었다.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명단을 읽어 내려갔다. 큰딸 이름이 11번에 적혀 있었다. 아리셀 희생자 고 엄정정씨의 어 lh대학생전세자금대출 머니 이순희씨가 기억하는 1년 전 그날이다.
2024년 6월24일 오전 10시30분께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에 있는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화재가 난 장소는 아리셀의 총 11개 건물동 가운데 리튬 1차 전지를 검수하는 3동 2층이다. 사건 당시 3동 2층에는 노동자 43명이 있었다. 이 사고로 23명이 숨 새마을금고 보험조회 지고 8명이 다쳤다. 희생자 23명 가운데 18명은 외국 국적을 가진 이주노동자였다. 한국 혹은 외국에서 살던 이주노동자의 유족은 소식을 접하곤 화성으로 모였다가 다시 흩어졌다. 어느덧 사계절이 흘렀다.
아리셀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시사IN〉이 이주노동자 유족 3인을 만났다. 아리셀 참사 희생자 고 이해옥씨의 사촌언니 여국화씨(48), 상공인 고 엄정정씨의 어머니 이순희씨(51), 고 최은화씨의 남편 박창선씨(55)다. 사고가 발생한 지 벌써 1년이 지났지만, 차별 없고 안전한 일터를 만들어달라는 유족의 염원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고 엄정정씨의 어머니 이순희씨는 ‘REMEMBER 20240624’라고 적힌 하 전략경영연구 늘색 팔찌를 차고 있다. 사고 이후 유가족들은 하늘색을 아리셀 참사를 상징하는 색깔로 정했다. ⓒ시사IN 이명익


참사 당시 아리셀 공장 3동 2층 작업장의 모습은 CCTV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오전 9시24분경, 3만5000여 개의 리튬 배터리 포장팩이 작업장 한쪽에 적치됐다. 오전 10시30분경, 적치된 배터리 중 한 개가 폭발하면서 약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작업자 2명이 주변 가연물을 정리하려고 접근하고, 남은 작업자는 다른 작업을 계속했다. 이때 배터리가 또다시 폭발하면서 불길이 올라왔다. 작업자가 분말소화기로 불을 끄려 했지만 연기는 점점 거세졌다. 결국 다수의 배터리가 연이어 폭발하면서 짙은 연기가 CCTV를 가렸다. 배터리 1차 폭발부터 작업장 내 농연이 확산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42초에 불과했다.
아리셀 참사는 ‘철저한 인재’로 불린다. 화재가 발생한 공장 3동 2층은 배터리 완제품을 검수하고 포장하는 공간이었는데, 작업장과 배터리를 적재하는 곳이 분리되지 않았다. 배터리를 탈출구에서 가까운 위치에 쌓아둬 대피로 확보가 어려웠다. 더구나 참사 이틀 전에도 화재가 발생했는데 아리셀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군납 제품의 납기를 맞추기 위해 제조공정을 무리하게 가동한 정황도 뒤늦게 드러났다.
희생자 대부분은 이주노동자, 하도급 노동자라는 교집합으로 묶인다. 희생자 23명은 중국 국적 17명, 한국 국적 5명, 라오스 국적 한 명이다. 이 중에서 3명은 아리셀의 정직원, 20명은 파견업종으로 등록하지 않은 위장 도급업체 메이셀을 통해 ‘파견’된 노동자였다. 아리셀 파견직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보다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희생자 대부분은 배터리가 폭발한 위치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작업장 모퉁이에서 발견되었다. 근처에 출입구가 하나 더 있었지만, 그 출입문은 정규직 직원의 지문을 찍어야만 열리는 문으로 파견직 노동자는 그것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여기에 사는 사람 중에서 용역업체를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그냥 신분증 가지고 가서 거기에서 일하려 하면 다 일을 안내해줘요.” 이순희씨가 말했다. 이순희씨의 딸 엄정정씨도 지인을 통한 직업소개로 사고 발생 2개월 전인 2024년 4월부터 아리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부모와 떨어져 중국에서 자란 엄정정씨는 불과 1년 전 한국에 들어왔다. 이제 가족이 한 지붕 아래서 다 함께 살 수 있다는 안도감이 들던 차에 사고가 일어났다. 딸이 자꾸만 떠올라서 도저히 집에 들어갈 수 없었던 이순희씨는 결국 이사를 했다.



2024년 6월24일 경기도 화성시 아리셀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가운데 희생자 유가족이 현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국적에 따라 다른 목숨값
작업장에서 파견직 이주노동자에게 적용된 차별은 이주노동자 유족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사건이 발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족은 회사 측의 합의 제안을 개별적으로 받았다. 아리셀 측은 노무사를 통해 장의비, 유가족 항공비 그리고 숙박비를 지급하겠다고 유족에게 직접 연락했다. 회사 측은 일찍 합의를 원하는 유족에게는 “추가 배려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언제까지 합의하면 몇천만 원을 더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합의한 유족에게는 처벌불원서를 요청했다. 처벌불원서는 범죄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한 문서다. 주로 법정에서 감형을 위해 선처를 호소할 때 사용된다.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 대변인을 맡으며 당시 상황을 지켜본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한상진 정책기획국장은 “빨리 합의를 해 여론의 관심에서 벗어나려는 의도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건 초기 대부분의 유족은 합의를 거절했다.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큰 문제는 비상식적인 ‘일실수입’ 계산법이었다. 일실수입이란 사망 시점부터 만 65세까지 일했을 때 받았을 것으로 예상되는 수입이다. 1차 합의안에서 희생자의 일실수입은 국적과 비자에 따라 차등 계산되었다. 아리셀은 일부 이주노동자 유가족에게 일실수입을 산정할 때 ‘길림성(지린성) 제조업의 평균임금’으로 계산하겠다고 제안했다. 고 이해옥씨의 사촌언니 여국화씨는 “실제 길림성 평균임금이 얼마인지는 잘 모르지만, 중국 제조업·요식업에서 일하는 노동자 임금은 한국 임금의 절반 정도”라고 말했다. 아리셀 화재 유가족 교섭단과 아리셀의 첫 교섭도 지난해 7월5일 30여 분 만에 성과 없이 종료되었다. 회사 측은 보상 기준을 ‘내국인 기준’으로 바꾸겠다고 뒤늦게 전했지만, 그 역시 ‘최저임금’이라는 조건이 따라붙었다.



고 최은화씨의 남편 박창선씨의 가방에도 작은 하늘색 리본이 달려 있다. ⓒ시사IN 이명익


고 최은화씨 배우자 박창선씨는 말했다. “한국 사람이랑 같은 장소에서 작업하다 일이 생긴 건데, 영주권이고 비자고 그런 것을 따지는 게 어디 있나요. 길림성 제조업 노동자라니. 돈을 더 많이 달라는 문제가 아니라, 그냥 정주 노동자와 똑같은 대우를 해달라는 겁니다. 돈이 필요했다면 합의는 진작에 끝났을 것이고, 진정성 있는 사과를 했다면 여기까지 안 왔을 겁니다. 정당한 대화를 해야죠.”
박창선씨는 지금까지 합의하지 않은 아리셀 참사 유족 다섯 중 한 명이다. 박창선씨에게는 장성한 두 딸이 중국에 남아 있다. 아내와는 사이가 참 좋았다고, 살면서 몇 번 다툰 적도 없다고 회상하며 박창선씨는 손바닥으로 눈물을 훔쳤다. “(딸에게) 아빠가 아빠 엄마 노릇 다 하겠다고 말했어요. 그 대신 힘들겠지만 동등한 대우를 할 때까지 합의는 절대 못 보겠다고.” 박창선씨는 최근 아리셀 박순관 대표 등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걸었다.
한국에 살기 때문에 곧장 대응할 수 있었던 박창선씨와 달리, 사고 당시 해외에서 환전할 겨를도 없이 급하게 입국한 유족도 여럿 있었다. 당시 유족들은 화성시가 마련한 임시 숙소에서 숙박을 해결했다. 화성시는 유족에게 담당 공무원을 붙이며 도왔지만, 사고 직후에는 ‘원칙’을 이유로 “7일만 지원할 수 있다”라고 유족에게 말했다. 행정안전부 재해구호기금 집행 지침에 따르면 유족에게 지정된 임시 주거시설 설치나 사용이 어려운 경우 숙박시설을 지원할 수 있고, 이 경우 7일간 지원을 원칙으로 한다고 돼 있어 특정 시점에 지원을 종료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유족이 항의하자 화성시청은 “친인척은 7월10일까지, 직계존비속은 7월31일까지만 숙식 지원을 한 뒤 종료한다”라고 유가족에게 다시 통보했다.
실제 이용 가능한 비상구라도 있었다면
민주노총 한상진 정책기획국장은 그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7일은 터무니없이 짧다”라고 말했다. “특히 해외에서 온 유족으로서는 한국에 들어오기까지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한데, 가족이 왜 죽었는지도 모르고 참사를 일으킨 사람들이 어떻게 처벌받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돌아가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화성시는 결국 지원 기간을 지난해 12월까지 연장했다.
“중국에서 온 이모와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다. 국방부, 대통령실 앞, 고용노동부, 박순관 대표 자택 앞, 경기도청, 노동부 경기지청, 수원지법, 에스코넥 본사···. 집회도 참석하고 간담회도 따라다니고 안 가본 곳이 없다. 사촌동생 이해옥씨는 사고 발생 126일 만에 발인했다. 사건이 해결이 안 되었으니까. 그동안 동생의 시신이 냉동고에 방치되어 있었다. ··· 이모는 수면제 없이 잠들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도 치유가 되겠나. 이 아픔은 평생 간다.” 여국화씨의 말이다.



고 이해옥씨의 사촌언니 여국화씨는 하늘색 스카프를 목에 둘렀다.ⓒ시사IN 박미소


사고 소식이 전해지자, 이해옥씨의 어머니도 중국에서 급하게 입국했다. 한국에서 살고 있던 이씨의 사촌언니 여국화씨가 이씨의 어머니를 모시면서 추모 행사에 동행했다. 어머니의 건강이 악화하면서 이를 염려하던 중국의 큰딸(이해옥씨의 언니)이 그만 합의하자고 말을 꺼냈다. 이씨의 어머니는 화성시가 숙식을 지원하던 지난해 12월까지 버티다 결국 회사 측과 합의를 하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반년이 지나고, 아리셀 사고 1주기가 다가왔다. 추모행사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은 이해옥씨의 어머니는 날짜에 맞춰 한국에 들어오기로 했다. 6월18일자 한국행 항공권을 끊었다. 중국 항저우 샤오산 공항에서 출발해 인천공항에 도착할 계획이었다.
6월18일 오후 인천공항 제1터미널, 들떠 보이는 여행객 사이로 여국화씨는 두 손을 모은 채 조용히 이모를 기다렸다. 하늘색 스카프를 목에 두른 여씨는 입국장 출입구의 깜빡이는 전광판을 응시했다. 이모가 회사 측과 합의한 이후 한국에 들어오는 건 반년 만이었다. 이모가 중국으로 돌아가는 날 여국화씨는 배웅하지 못했다. “언제 가시는지 알면서도 집회 일정에 참여하느라 나가지를 못했어요. 그때는 에스코넥이 있는 광주로 왔다 갔다 했으니까요. 이모가 합의하고 중국으로 돌아가는 게, 머리로는 ‘잘했다, 잘했다’ 하면서도 사실 너무 슬펐죠···. 일단 이모가 오시면, 당장 내일(6월19일) 국회에서 열리는 토론회에 참석할 거고요. 6월21일부터는 참사 1주기 추모대회가 있어요. 거기도 갈 거예요.”
이해옥씨의 어머니가 한국에 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엄정정씨의 어머니 이순희씨는 ‘시흥시에서 차를 몰고 모시러 가겠다’고 선뜻 나섰다. 인천공항에서 이순희씨와 이모를 기다리던 여국화씨는 옅은 웃음을 지었다. “이따가 둘이 만나면 또 우실 것 같아요. 유가족끼리 만나면 결국 눈물이 나요. 처음에는 웃음으로 시작해도 저도 모르게 자꾸 눈물이 나더라고요. 회포를 풀 겸 만나도 자연스레 그 이야기가 또 나오고. 그러면서 또 울고.” 유족을 돕는 이는 또 다른 유족이었다.
아리셀 참사의 재발을 막기 위한 단서는 여전히 아리셀에 남아 있다. 2024년 9월5일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 진상규명 재발방지팀은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1차 보고서’를 발행했다. 아리셀 참사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던 8가지 가정을 세웠다. “군납 기일을 맞추려고 불법적 고용을 지속적으로 늘리지 않았다면. 군납 과정의 불법성을 확인한 국방부가 생산을 중단시켰다면. 불법파견을 당한 노동자들이 불법 직업소개를 통해 전화 한 통화로 취업과 해고가 반복되는 고용 형태가 아니었다면. (2024년) 6월22일 폭발 사고에 조치라도 했다면. 생산품을 안전하게 분리 적재하고 폭발에 대비한 구조와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면. 안전교육과 대피훈련을 통해 폭발과 화재 대응법과 대피로를 알고 있었다면. 작업공간에서 바로 연결되는 비상구라도,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비상구라도 있었다면. 완제품 적재를 유일하게 바깥과 바로 연결되는 출입구 앞에 하지 않았더라면.” 진상규명이라는 과제를 풀기 위해 작성된 보고서는, 비슷한 사고를 막기 위한 일종의 매뉴얼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리셀 참사 유족에게 앞으로 무엇이 필요할지 물었다. 박창선씨는 ‘정의’를 말했다. “한국에 정의가 있다면, 그 사람들이 받아야 하는 처벌을 다 받고, 그걸로 인해서 다른 기업의 사장들도 앞으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더 나은 환경을 마련해줬으면 좋겠어요.” 여국화씨와 이순희씨는 ‘안전’을 희망했다. “가족을 잃은 아픔이 너무 커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내국인이든 이주민이든 똑같아요. 일하러 나갔다가 웃으면서 집에 돌아오는 세상이면 좋겠어요.”



2024년 6월24일 경기도 화성시 아리셀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가운데 소방대원들이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아리셀 참사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2차 피해 우려가 있어 이 기사의 댓글 창을 닫습니다.
문준영 기자 juny@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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