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구제 [송용진의 수학 인문학 산책]이승만과 박정희의 퇴장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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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박정희의 이름을 딴 리박스쿨이나 이와 유사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익히 짐작할 수 있다. “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이고 박정희는 우리나라를 잘사는 나라로 만들어 준 영웅이다. 게다가 북한 공산당의 침략과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구해 주었다. 이분들을 부정하는 자들은 반국가세력이다”라는 자신들의 믿음을 널리 알리고 싶은 것일 테다. 그들은 우리 교과서가 잘못돼 있고 학교에서는 잘못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고 믿는다. 결국 그들은 우리나라 역사학자 대다수가 우리 근대사를 잘못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이승만에 대해서는 그의 반공주의만 주목하고, 그가 저지른 여러 가지 비열한 행위와 무리한 독재 시도 등은 애써 무시하려는 사람이 많다. 한편 박정희는 아직도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딸은 ‘박정희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한 당의 대표로 추대됐고 결국 대통령까지 됐다. 그가 시작한 호남에 대한 혐오는 심각한 영호남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박정희는 위대한 대통령?
박정희를 찬양하는 사람들은 “그는 국민을 잘살게 하는 데에만 전념했다” “그는 막걸리를 좋아하는 소박한 사람이다”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이미지는 선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뿐이다. 그가 죽은 날 밤의 상황이 모든 것을 대변한다. 그는 평소와 같이 자신의 안가에서 일반인 여성 접대부와 유명 여가수를 불러서 부하들과 양주를 마시다 심복이자 2인자인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죽었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조직폭력배의 살인 사건과 다름이 없다.
사람들은 흔히 “박정희가 독재자이긴 했지만 경제 발전을 이끈 공은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 말은 민주주의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에 대한 인식의 부족을 나타낸다. 그가 경제 발전을 ‘이끌었다’는 것도 사실과 거리가 있다. 독재자가 경제 발전을 이끈 나라는 거의 없다. 독재 권력을 유지하는 데에 동원된 세력은 부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이 경제 발전을 이룬 것도, 중국이 경제 발전을 이룬 것도 지도자의 영도력 때문이 아니라 ‘값싸고 우수한 노동력’ 덕분이다. 당시에 독재와 부패가 없던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은 우리보다 더 빠른 성장을 거두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 말기에 나는 대학생이었다. 당시의 독재는 정말 지독했다. 교정은 사복 경찰로 가득했고 모든 고등학생, 대학생은 학도호국단 소속으로 군사교육과 사상교육을 받아야 했다. 집회와 언론의 자유는 철저히 차단됐으며 사석에서도 정권을 비판하면 어디론가 끌려갔다. 노동자들의 환경은 끔찍했으나 노동권을 주장하면 빨갱이라며 탄압했다.
평생을 기회주의자로 살았던 박정희에게는 여러 행운이 따랐다. 일본의 도움이 그중 하나다. 일본으로부터 받은 5억달러의 배상금은 당시에는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이 돈은 국가 기반시설과 충주 비료공장 건설 등에 쓰여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됐고 그 자신은 별도의 축재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주도한 중화학공업 육성은 그의 아이디어가 아니다. 일본의 산업구조를 그대로 모방한 것이다. 일본 기업들의 협조와 일본 품종의 쌀도 도움이 됐고 베트남전쟁 참전도 호재가 됐다. 집권 세력의 부패는 심각했지만, 외국인들의 투자와 값싸고 우수한 노동력 덕분에 경제가 발전했다.
낡은 이념 대결은 이제 그만
나는 보수의 가치를 존중한다. 좌우 균형이 잘 맞는 정치 생태계가 좋다고 믿는다. 원칙과 정의, 국가의 경제적 발전과 위상을 중시하는 보수의 가치도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진보정당과 보수정당은 순수하게 정책으로 경쟁해야 한다. 공산주의는 이미 패망해 지구상에서 멸종된 지 오래고, 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한국 정치와 경제에 어려운 문제를 던져주고 있다. 이제 우리는 과거의 독재자들은 잊어버리고 낡은 이념 대결에서 벗어나야 한다. 경제, 외교, 교육, 복지, 문화 등 여러 국가적 현안에 대한 건전한 정책 대결에 몰두해야 할 때다.
공룡의날은 6월1일이다. 그런데 국제 공룡의날은 5월 셋째 주 화요일이다. 둘 다 기원이 그리 오래되진 않은 모양이다. 게다가 명확한 이유 없이 지정된 것으로 보인다. 5월의 기념일은 미국 플로리다에서 어느 선생님들이 여름방학을 앞두고 학생들을 과학과 공룡 탐구에 빠져들게 하려고 만들었다고 한다. 공룡사랑단의 세를 키우려는 건전하고도 야심만만한 속셈이 엿보인다.
6월 기념일의 유래는 더욱 우연하다. 미로찾기 그림 작가인 조 워스는 6월1일에 블로그에 공룡 모양 미로를 올렸다. 국제 공룡의날은 지났으므로 그는 ‘공룡의날! 축하’라고 썼다. 이후 인터넷에서 공룡의날을 검색하면 6월1일이 나오게 됐고, 자연히 인식이 굳어졌다. 세계 곳곳에서 공룡을 기념하게 된 것이다.
공룡의날이 둘이라도 문제는 없다. 기념할 기회가 둘로 늘어났으니 더욱더 좋은 일이다. 한국 국립중앙과학관의 경우 몇년째 6월1일에 맞춰 행사를 개최했다. 마침 올해는 공룡 연구가 200주년을 맞이했고, 올해의 ‘공룡덕후박람회’는 아주 화려했다. 국내에서 공룡에 열정을 불태우는 사람이 (‘어릴 땐 좋아했죠’를 빼고) 어쩌면 한 줌이라 해도 그곳에서는 확실히 절대다수였다.
‘공통령’ 선거도 큰 인기를 끌었다. 과학관은 진짜 선거처럼 각 후보 공룡의 공식 포스터를 제작했다. 초식공룡 트리케라톱스는 그린공존당 소속으로, ‘지구 온난화 대응 공룡 기후회의’ 등을 공약으로 걸었다. 티라노사우루스는 공룡보안전선당 후보로서 군사력과 질서를 강조했다. 목이 긴 브라키오사우루스는 높은 곳에서 두루 본다는 자세를 취했다. ‘멸종위기종 재생 프로그램’ ‘높이 차별 금지법’ 등이 생명복지연합당 소속 브라키오사우루스의 공약이었다. 이번 선거를 위해 과학관은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실제 사용하는 물건을 빌렸다고 한다. 어른들은 익숙하게 기표소에 들어갔다. 아이들은 종종 기표소에 한참 머물렀다. 누구에게 투표할지 고심하는 듯했다.
솔직히 가장 인지도가 높은 티라노가 공통령에 당선되리라고 생각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지만 득표율은 놀랍게도 꽤 접전이었다. 비교적 덜 유명한 공룡에게도 다 지지자가 있었다. 박람회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점착식 메모지에 소원을 빌었다. 다양한 소원 사이사이에 ‘멸종’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보였다. 멸종, 맞다. 공룡은 조류를 제외하면 이미 사라졌다. 공통령 이야기는 우리끼리 하는 놀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기념’에는 적절하게 어울리는 이벤트였다.
기념은 기록하고(記) 생각하며(念) 잊지 않는 일이다. 이젠 없지만 계속 주목할 필요가 있거나, 지금 당장 존재하고 있는데 경시되는 것이 기념할 대상으로 정해진다. 다시 말해 기념은 존재를 되새기고 또 바라보는 행위다. 보는 일에는 시간을 넘는 힘이 있다. 밤하늘의 별빛이 수십광년 전의 것이라도 보는 사람에게는 오늘 밤의 빛이다. 옛날에 나온 텍스트여도 읽기를 통하면 현재에 재생된다. 그리고 과거-현재를 이어보고 나면 현재-미래 역시 이을 수 있다. 오늘을 마치 과거처럼 미리 되돌아보는 것이다. 소원을 적은 메모지에도 공룡을 대신해 당부하는 말이 있었다. 너도 멸종하지 않게 조심해.
미국은 14일 완전히 상반된 두 쪽으로 갈라졌다. 한쪽에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79번째 생일과 미 육군 창설 25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열병식이 열렸고, 다른 한쪽에서는 2기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가장 큰 반트럼프 물결인 ‘노 킹스(No Kings·왕은 없다)’ 시위가 펼쳐졌다.
이날 워싱턴의 링컨기념관 앞~콘스티튜션 애비뉴에는 병력 6700명과 150대의 군용 차량, 50대의 항공기, 최신 전차들이 줄지어 행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1발의 예포 속에 등장했고, 군중은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마치 대통령 개인의 권위를 국가 행사로 포장한 듯한 장면이었다. “적들이 미국인을 위협하면 우리 군이 그들을 철저히 몰락시킬 것”이라는 트럼프 연설은 군의 역할을 초월한 절대권력자의 언어에 가까웠다.
이에 반해 미 전역을 가득 메운 ‘노 킹스’ 시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선언이었다. “대통령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 수백만명의 시민은 권위주의적이고 비민주주의적인 트럼프를 향해 헌법의 원칙을 다시 외쳤다. 필라델피아 10만명, 뉴욕 5만명, 로스앤젤레스에서 2만5000명이 거리로 나와 인권, 다양성, 이민자의 권리를 상징하는 깃발을 들었다.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주니어의 장남은 “공동체와 연대가 해답”이라고 했다.
열병식과 시위는 외양도 다르지만, 본질은 하나의 질문에 대한 상반된 응답이었다. “누가 이 나라의 주인인가?” 대통령인가, 군대인가, 아니면 시민인가. 트럼프의 열병식은 권위주의적 국가 모델의 상징이었고, ‘노 킹스’는 시민주권의 원칙을 되살리기 위한 강력한 외침이었다. 민주주의가 흔들릴 때, 제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때, 그 빈틈을 메우는 건 결국 광장에 선 시민들이다.
“우리는 왕을 원하지 않는다.” 2025년 미국 거리에서 울려 퍼진 이 외침은 1776년 미국 건국 당시 조지 3세의 폭정에 맞서 독립을 선언했던 그 정신의 부활이다. 권력자가 법과 시민 위에 군림하려는 역사는 반복되지만, 민중은 그때마다 다시 깨어나 저항한다.
‘노 킹스’의 외침은 단지 트럼프 한 사람이 아닌 모든 권력에 보내는 경고이며, 시민이 끝까지 지켜내야 할 민주주의 본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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