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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나는 태어난 지 열흘 밖에 안 된 큰아이와 산후조리도 끝나지 않아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내를 두고 태안으로 향했다. 2005년 1월 17일, 아내는 애써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 너머 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가장'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의 업무는 첫날부터 쉽지 않았다. 모든 것이 낯설고 서툴렀고 특히 발전소를 멈추고 진행하는 'OH(오버홀)' 작업은 말 그대로 극한의 노동이었다. 새벽에 출근해 밤 12시가 넘어 퇴근하고, 씻고 자리에 누우면 어느새 다시 새벽. 극한의 노동은 주말도 없이 반복됐다. 새벽에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하니 아내와 아이의 잠든 모습만 볼 수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행주식자금
복했다. 일할 수 있었고, 가족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발전노동자들의 일터가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2025년 12월 태안 1호기를 시작으로 전국의 석탄화력발전소가 순차적으로 폐쇄될 예정이다. 정부는 기후위기와 탄소 중립을 이유로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를 추진하고 있지만, 발전소 폐쇄로 고용불안에 놓이게 되는 발전노동자하나포유
의 삶을 지키는 고용에 관해 고민하는 흔적은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동안 발전노동자들은 국민에게 안정적인 전기를 공급하며 대한민국 산업과 국민 생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왔고 나름 자부심도 있었다. 필요할 때는 '산업역군'이라 부르더니, 이제는 쓰다가 버려지는 '소모품'이 되는 것 같아서 비참하고 힘들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는 단순히 발자원 주식
전소 문 하나 닫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수천 명의 발전노동자의 삶과 일터, 가족의 삶과 일상, 지역사회와 경제가 함께 멈추는 일이다. 발전소가 사라지면 가게는 문을 닫고, 거리는 텅 비며,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사라진 태안은 공동화되고 결국 소멸 도시가 될 것이다.

이 때문에 발전노동자들은 기15tv
후도 살리고, 노동자도 살리고, 지역도 살리는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하다고 수년 전부터 외쳐 왔지만 대한민국 정부도, 충청남도도, 태안군도 발전노동자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침묵으로 일관해 오고 있다. 이것은 비단 태안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엣스타





▲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노동자-시민 대행진 포스터


ⓒ 정의로운전환 공동행동




최근 한 대선 후보는 2040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전면 폐쇄를 약속했는데 그 공약 어디에도 발전노동자의 일자리와 삶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산불로 사라진 곳에 생태계 복원을 말하고, 생물 다양성을 말하고 있지만,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로 지켜야 할 생명 그 생명의 목록에 발전노동자는 없다. 발전노동자는 묻고 싶다. "우리는 어떤 생명입니까?"

생태계를 복원하고 생물의 다양성을 만드는 것과 함께, 발전노동자의 삶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고 북극곰을 살려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북극곰만이 아니라 발전노동자의 삶도 함께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더라도 그 안에서 일해온 노동자들, 그 지역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도 계속되어야 마땅하다.
기후위기 극복과 탄소 중립을 위해 석탄화력발전소의 폐쇄는 시대적 과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발전노동자들은 본인들의 일터가 사라지는 걸 알면서도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그 전환의 과정이 정의롭지 않다면, 또 다른 사회적 불평등과 지역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속도'만이 아니라 '방향'이다.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쇄와 함께 발전노동자의 삶을 지키고 지역사회도 지켜내는 지속 가능한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공공재생에너지 확대와 발전노동자 총고용 보장은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 공공기관의 직접 고용 확대와 직무 전환 교육을 통해 공공재생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노동자들이 안정적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정책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
2025년 5월 31일, 전국의 노동자들과 시민이 충남 태안과 경남 창원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노동자·시민 대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공공재생에너지 확대하라" "발전노동자 총고용 보장하라" 더 크고 더 힘차고 더 단단하게 외칠 것이다. 5월 31일 노동자 시민 대행진은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로 생존권을 잃고 있는 발전노동자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함께 모아내는 행진이다. 기후위기에 책임 있고 제대로 된 대응을 하고, 누구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강력한 요구의 표현이다.
노동자 시민 대행진은 정부의 정책 전환을 촉구와 실질적인 대안 마련을 촉구하는 정치적 압력이자, 전국적인 연대의 장이 될 것이다. 정부와 국회, 지자체는 이제 응답해야 한다. 기후위기로 석탄화력발전소 폐쇄가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희생되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이어야 한다. 정의로운 전환 이 길의 한가운데에는 노동자와 시민이 함께 해야 한다. 그리고 5월 31일, 우리는 그 길 위에서 함께 걷고, 함께 외칠 것이다. "석탄발전은 멈춰도 우리 삶은 멈출 수 없다", "누구도 홀로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정의로운 전환은 말로만 되지 않는다, 함께 외치고, 함께 행동할 때 비로소 정의로운 전환이 완성될 수 있다.
5월 31일 태안과 창원에서 진행될 발전노동자의 삶과 우리의 삶을 지키기 위한 노동자 시민 대행진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덧붙이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