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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평화 재건 활동가 미셸 카르티에(오른쪽). 이한재 제공
콜롬비아. 한국인의 일상에서는 커피숍에서나 겨우 들어볼 수 있는 이름이다. 나쁘게는 넷플릭스 드라마 속 마약 카르텔이 활개 치는 국가 정도로 기억하기도 한다. 실제로 콜롬비아는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게릴라 조직과 갱단이 얽힌 참혹한 분쟁을 겪어왔고, 이 와중에 수십만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됐다. 하지만 2016년 최대 무장조직 FARC(콜롬비아무장혁명군)와 정부가 평화협정을 맺으며 전투원들의 무장 해제로 이어졌다. 반세기 넘게 이어진 내전을 대화로 끝낸 역사적 사 바다이야기슬롯 건이었다. 이후 콜롬비아는 눈에 띄게 회복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6000달러에서 8000달러를 넘어섰고, 연 10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나라가 됐다.
60년 전쟁의 총성은 멎었으나 폭력은 진화했다
미셸 카르티에(Michelle Cartier)는 콜롬비아 진실위원 골드몽 회, 피해자지원기구, 유엔 산하 국제이주기구(IOM)를 거치며 평화 재구축의 10년을 함께한 전문가다. 미셸에 의하면, 콜롬비아 분쟁의 뿌리는 1948년 대선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자유당 대선후보 가이탄의 암살로 촉발된 10년간의 유혈 사태로 무려 2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양대 정당의 합의로 내전이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제3의 정치 세력을 제도적으로 야마토게임예시 완전히 배제한 양당 간의 야합은 이후 이어진 무장 투쟁의 도화선이 됐다.
결국 1950년대부터 콜롬비아에는 FARC와 ELN(민족해방군) 같은 좌파 게릴라, AUC(콜롬비아 연합방어군) 같은 우파 준군사조직, 나아가 국제적 마약밀매 조직까지 얽히며 폭력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정규군이 게릴라 소탕을 명분으로 준군사조직과 결탁해 민간인 오리지널바다이야기 학살에 가담하는 등 ‘피를 피로 씻는’ 비극이 이어졌다. 이 60년간의 분쟁 과정에서 콜롬비아 전체인구의 거의 20%에 해당하는 1000만명 이상이 직접적인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이 분쟁은 산토스 전 대통령이 2012년 FARC와 비밀 협상을 시작하면서 실마리가 보였다. 미셸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60년 손오공릴게임 전쟁의 상처가 너무 깊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막대한 해를 끼친 무장 단체가 감옥에 가는 대신 사회로 돌아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습니다.” 한때 협정 자체에 반대하는 국민이 절반을 넘었을 만큼 험난한 과정을 거쳐 2016년 불완전하지만 역사적인 평화협정이 맺어졌다.
10년이 지난 지금, 숱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무장을 해제한 FARC 대다수는 다시 무기를 들지 않고 민간인으로서 사회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진실위원회는 분쟁의 참상을 기록했고, 평화특별재판소(JEP)는 전쟁 범죄에 대한 첫 판단을 앞두고 있다. 콜롬비아의 살인율도 크게 낮아졌고, 과거 위험 지역으로 분류되던 곳들이 관광지로 변모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이 협정의 전부는 아니다. 2016년 협정은 15년 기한의 거대한 국가 개조 프로젝트였다. 전체 기간의 3분의 2가 지났고, 관련 예산의 50% 이상이 쓰였음에도, 내전의 근본 원인이었던 불평등 해소를 위한 핵심 과제의 약 47%는 여전히 진척이 미미하다. 미셸은 그 원인을 돈이나 전문성의 부족이 아닌 ‘시스템 자체’에서 찾는다. “30개가 넘는 기관이 제대로 된 소통 없이 중복된 계획을 실행하고 있어요. 한 기관이 일을 마쳐도 후속 기관이 2년 뒤에야 현장에 도착한다면 정책은 설계된 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지지부진한 정책 이행은 결국 악순환을 불렀다. 국가가 방치한 FARC의 빈자리는 최근 몇년새 새롭게 등장한 무장단체와 국제적인 범죄 카르텔이 차지하고 있다. 2025년 기준으로 각종 범죄 조직원의 숫자는 2만7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셸은 “2016년 평화협정이 분쟁을 끝낸 것이 아닙니다. 재편했을 뿐이에요”라고 단언한다. 실제로 올해 1월 베네수엘라 국경 카타툼보 지역에서는 무장단체 간 충돌로 10만명 이상의 피란민이 발생하는 최악의 위기가 터지기도 했다.
콜롬비아 평화 재건 활동가 미셸 카르티에. 이한재 제공
치유를 위한 긴 여정에 뛰어들다
미셸이 이 험난한 길을 택한 데는 성장 과정에서 만난 롤모델들, 특히 평생 콜롬비아 원주민 공동체를 위해 헌신한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했던 미셸은 학업을 마치자마자 곧장 내전 수습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다양한 조직에서 평화 재건의 경험을 쌓은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진실위원회 시절의 ‘피해자 대면식’이다. 피해자 가족들과 가해자 측이 수개월의 준비 끝에 마주 앉는 엄숙한 자리. 미셸은 “국가기관이 처음으로 그 범죄행위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순간이었다”고 말한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풍경이다. 국민보도연맹, 제주 4·3, 광주 5·18 민주화운동의 피해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콜롬비아에서도 분쟁 중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이를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없는 세월을 살아왔다. 실종 신고를 해도 “반정부 게릴라에 가담한 것 아니냐”는 차가운 시선만 돌아왔다. 그들에게 국가가 마침내 “부당한 폭력과 학살이 있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비록 불완전할지언정 치유의 첫걸음이었다. “저도 그 자리에서 매번 울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이야말로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때였어요.”
진실위원회는 이 참상을 세상과 나누기 위해 연극, 노래, 팟캐스트 등 예술을 적극 활용했다. 미셸 역시 진실위원회 보고서를 청소년용 팟캐스트로 번안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그는 진실과 치유를 위한 여정에서 예술의 역할을 이야기하며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언급했다. “대중에게 수천 페이지짜리 보고서를 읽으라고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소설 한 권은 세계 모두를 치유의 여정에 동참시킬 수 있습니다. 사람을 부수지 않으면서 증오를 공감으로 바꾸는 이야기의 힘, 그것이 핵심이에요.”
우리는 어떻게 ‘전쟁 모드’를 끌 것인가
한국 역시 분단과 독재가 남긴 상흔 그리고 그로 인한 갈등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셸은 한국을 포함한 세계의 경험이 서로 “공명한다”고 말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칠레, 스리랑카 그리고 한국. 맥락은 전혀 다르지만 놀라울 만큼 공통점이 있습니다. 결국 긴 분쟁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이 회복하는 일이며, 핵심 질문은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전쟁 모드에서 빠져나와 이웃 옆에서 다시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느냐’는 것이죠.”
미셸은 가장 중요한 과제로 “내면에 깊게 뿌리내린 ‘전쟁 모드’를 끄는 것”을 꼽았다. 생각이 다른 상대를 굴복시켜야만 문제가 해결된다는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진정한 평화는 요원하다는 것이다.
“거창한 정치 회담만이 평화를 만드는 게 아닙니다. 내 이웃을 조금 더 다정하게 대하고, 아이들을 타인에 대한 연민을 가진 사람으로 키워내는 것. 그 일상의 실천이야말로 평화를 짓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이한재 변호사
콜롬비아. 한국인의 일상에서는 커피숍에서나 겨우 들어볼 수 있는 이름이다. 나쁘게는 넷플릭스 드라마 속 마약 카르텔이 활개 치는 국가 정도로 기억하기도 한다. 실제로 콜롬비아는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게릴라 조직과 갱단이 얽힌 참혹한 분쟁을 겪어왔고, 이 와중에 수십만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됐다. 하지만 2016년 최대 무장조직 FARC(콜롬비아무장혁명군)와 정부가 평화협정을 맺으며 전투원들의 무장 해제로 이어졌다. 반세기 넘게 이어진 내전을 대화로 끝낸 역사적 사 바다이야기슬롯 건이었다. 이후 콜롬비아는 눈에 띄게 회복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6000달러에서 8000달러를 넘어섰고, 연 10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나라가 됐다.
60년 전쟁의 총성은 멎었으나 폭력은 진화했다
미셸 카르티에(Michelle Cartier)는 콜롬비아 진실위원 골드몽 회, 피해자지원기구, 유엔 산하 국제이주기구(IOM)를 거치며 평화 재구축의 10년을 함께한 전문가다. 미셸에 의하면, 콜롬비아 분쟁의 뿌리는 1948년 대선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자유당 대선후보 가이탄의 암살로 촉발된 10년간의 유혈 사태로 무려 2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양대 정당의 합의로 내전이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제3의 정치 세력을 제도적으로 야마토게임예시 완전히 배제한 양당 간의 야합은 이후 이어진 무장 투쟁의 도화선이 됐다.
결국 1950년대부터 콜롬비아에는 FARC와 ELN(민족해방군) 같은 좌파 게릴라, AUC(콜롬비아 연합방어군) 같은 우파 준군사조직, 나아가 국제적 마약밀매 조직까지 얽히며 폭력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정규군이 게릴라 소탕을 명분으로 준군사조직과 결탁해 민간인 오리지널바다이야기 학살에 가담하는 등 ‘피를 피로 씻는’ 비극이 이어졌다. 이 60년간의 분쟁 과정에서 콜롬비아 전체인구의 거의 20%에 해당하는 1000만명 이상이 직접적인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이 분쟁은 산토스 전 대통령이 2012년 FARC와 비밀 협상을 시작하면서 실마리가 보였다. 미셸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60년 손오공릴게임 전쟁의 상처가 너무 깊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막대한 해를 끼친 무장 단체가 감옥에 가는 대신 사회로 돌아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습니다.” 한때 협정 자체에 반대하는 국민이 절반을 넘었을 만큼 험난한 과정을 거쳐 2016년 불완전하지만 역사적인 평화협정이 맺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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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익숙한 풍경이다. 국민보도연맹, 제주 4·3, 광주 5·18 민주화운동의 피해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콜롬비아에서도 분쟁 중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이를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없는 세월을 살아왔다. 실종 신고를 해도 “반정부 게릴라에 가담한 것 아니냐”는 차가운 시선만 돌아왔다. 그들에게 국가가 마침내 “부당한 폭력과 학살이 있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비록 불완전할지언정 치유의 첫걸음이었다. “저도 그 자리에서 매번 울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이야말로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때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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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전쟁 모드’를 끌 것인가
한국 역시 분단과 독재가 남긴 상흔 그리고 그로 인한 갈등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셸은 한국을 포함한 세계의 경험이 서로 “공명한다”고 말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칠레, 스리랑카 그리고 한국. 맥락은 전혀 다르지만 놀라울 만큼 공통점이 있습니다. 결국 긴 분쟁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이 회복하는 일이며, 핵심 질문은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전쟁 모드에서 빠져나와 이웃 옆에서 다시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느냐’는 것이죠.”
미셸은 가장 중요한 과제로 “내면에 깊게 뿌리내린 ‘전쟁 모드’를 끄는 것”을 꼽았다. 생각이 다른 상대를 굴복시켜야만 문제가 해결된다는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진정한 평화는 요원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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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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