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정부검사출신변호사 “청정 영덕이면 뭐해, 내가 굶는데”…소멸과 위험 사이 ‘강요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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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가 휩쓸고 간 마을에 최근 ‘원전 유치’ 바람이 불고 있다. 석리·노물리·매정리·경정리 일대(약 324만㎡)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 신규 원전(천지원전) 예정구역으로 지정됐다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2017년 천지원전 건설 계획이 백지화된 바 있다. 탈원전 정책은 윤석열 정부에서 폐기됐고, 이재명 정부도 전임 정부에서 세운 계획에 따라 대형 원전 2기(104만㎡ 이상, 총 2.8GW)와 소형모듈원전(SMR) 1기(49만㎡ 이상, 0.7GW)를 새로 짓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 가운데 대형 원전 2기를 천지원전 예정지 주민들이 다시 유치하려고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원전 지을 데가 없다. 딱 한 군데 있는데, 지으려고 하다가 만 데”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는 천지원전 예정지를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영덕에서도 원전 유치를 둘러싼 찬반은 엇갈린다. 다만 전반적으로 원전 찬성 쪽에 기운 분위기다. 주민들은 왜 다시 원전을 ‘선택’하려 할까. 주간경향은 지난 2월 9일과 10일 석리와 영덕읍내, 축산면, 창수면 일대를 찾았다. 산불 이후의 삶을 복구하는 현장에서, 원전 유치를 바라보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고물’ 파는 주민들
석리에서 멀쩡한 집들은 대부분 해안 절벽 위 능선을 따라 지어진 주택들뿐이었다. 능선 아래 바다와 접한 절벽가에서 따개비처럼 붙어살던 주민 대부분은 현재 컨테이너로 만든 8평 남짓한 임시 주거용 조립주택(임시주택)에 산다. 지난해 새로 지어진 마을회관 앞에는 “산불로 잃은 석리 고향 원전 건설이 답이다”, “떠나가는 영덕군민 원전 유치로 막아보자”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마을이장인 이미상씨(65)는 “먹고 살 게 없으니 젊은 사람들은 다 마을을 떠났고, 대부분이 70대 이상 어르신들”이라며 “다들 원전이 들어서면 보상받고 마을을 떠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20년 전만 해도 마을의 남자들은 배를 탔고, 여자들은 해녀로 살았다. 산비탈에서는 밭농사를 짓고, 천수답(관개 시설 없이 빗물을 받아 농사를 짓는 논)에서는 쌀농사를 했다. 당시 60대였던 이들은 이제 80대가 됐다. 배를 타는 이들은 마을에서 젊은 축에 속하는 남성 3명뿐이고, 물질하는 여성은 없다. “젊을 때는 바다 나가서 미역도 하고 천초(우뭇가사리), 운단(성게), 전복, 해삼 같은 거 잡았지. 이제는 바다에 그런 것들도 거의 남아 있지 않고, 나이 들어서 물질도 못 하게 됐어.” 주민 윤금자씨(80)의 말이다.
현재 윤씨의 집은 노물리로 넘어가는 언덕 위, 한국수력원자력 소유의 땅 위에 세운 임시주택이다. 한수원은 2016년부터 2017년 초까지 천지원전 예정지의 약 18%를 사들였다. 산불 이재민을 위한 임시주택들은 한수원 부지 외에도 영덕군·계명대 소유 토지 등에 지어졌다. 이재민들은 이곳에 2년 기한으로 내년까지 머물 수 있는데, 윤씨에게 그 이후 계획을 묻자 “답이 없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영덕군에선 산불 피해를 입은 석리 등을 대상으로 지역재생 사업을 추진 중인데, 주택 대부분이 절벽가에 붙어 있는 데다 불법 건축물이 상당수라 지역재생도 쉬운 일이 아니다. 윤씨가 말했다. “원전이라도 들어오면 여기를 떠날 수 있지 않을까?”
9일 오후 윤씨와 주민들은 마을회관에서 이른 저녁으로 떡국을 먹고 함께 언덕 위 임시주택 단지로 향했다.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종이상자가 쌓여있는 것을 본 이들은 상자를 모아 인근 교회 건물로 옮겼다. 옮기는 일은 나이 어린 동생들에게 맡긴 채 지팡이를 내려놓고 앉아 쉬고 있던 윤씨가 말했다. “저거 모아서 (고물상에) 팔려는 거야.”
이날 만난 주민 몇몇은 천지원전을 백지화한 문재인 정부를 원망하기도 했다. 노인회장인 김영기씨(71)가 말했다. “여기 어른들 가슴에 못이 박혀 있어. 왜 그런 줄 아는가. 원전 들어온다고 하니까 보상금 받을 줄 알고 빚을 내서 자식들 장사시킨다, 사업시킨다 한 분들이 많았어. 그런데 원전 취소되고 돈 나올 구멍이 없으니까 다들 앞이 깜깜한 거지, 그러다가 불까지 난 거야. 다들 막막하지.”
석리에서 서쪽을 바라보니 멀리 풍력발전기 여러 대가 보였다. 영덕읍 창포리에 세워진 영덕풍력발전단지로 총 24기가 들어서 있다. 바람이 많은 지역이다 보니 2005년 국내 최초의 풍력 상업운전이 바로 이곳에서 시작됐다. 최근에는 주민들이 풍력과 태양광발전 등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바람연금’ ‘햇빛연금’을 고민하는 지역들이 늘고 있지만, 영덕풍력발전단지의 풍력발전기들은 수익 대부분이 외지의 투자자들에게로 간다. 수익의 일부만 영덕군의 세수로 잡힌다.
지난 2월 2일에는 20년 이상 운영해 노후화한 풍력발전기 1기의 날개가 부러지면서 고꾸라지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석리에서도 기둥이 꺾어버린 풍력발전기가 보였다. 이미상 이장이 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부러진 거 보이죠? 사고 나면서 다른 발전기도 모두 정지시켰어요. 풍력만 믿다가는 저렇게 된다니까요. 어느 순간에 전기가 모자라 암흑세계가 올 수도 있다니까. 그래서 원전이 필요한 거요. 탈원전하면 안 돼.” 이들에게는 15년 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보다, 당장 눈앞에서 벌어진 풍력발전기 사고가 더 힘이 셌다.
이장이 말을 이었다. “원전 없는 청정 영덕을 지켜야 한다는 사람들이 영덕에도 있죠. 근데 ‘청정’도 좋지만 내가 살아야 청정이 있는 거잖아요. 아무리 깨끗하면 뭐해 정작 나는 굶고 있는데…. 굶고 있는 주민들이 청정 지역을 어떻게 지켜요? 여기 공장이 있나, 뭐가 있나? 그래도 원전 들어오면 원전 직원들도 이곳으로 오고, 주민들도 경비를 한다던가, 이런 일거리라도 주어지지 않겠어요?”
석리 취재를 마치고 영덕역 인근의 ‘영덕 수소&원전추진연합회’ 사무실을 찾았다. 영덕 내에서 원전 유치 운동을 가장 활발하게 벌이는 단체다. 위원장 이광성씨(66)는 “소멸 위기 영덕에서 원전 유치는 소멸을 막을 유일한 대안”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두 손으로 등을 한번 만져보세요. 아무리 해도 손이 안 닿는 부분이 있어요. 그게 딱 영덕이에요. 동해안 가운데에 딱 자리 잡아서 이리저리 해도 잘 가게 되지 않는 곳, 사람들이나 기업들이 잘 오려고 하지 않는 곳이요. 일자리는 없고 사람들은 떠나죠. 이런 지역에 오겠다고 하는 건 원전 말고는 없다는 겁니다. (영덕 바로 위) 울진은 더 오지였어요. 예전에는 울진에서 영덕 간다고 하면 ‘큰 들로 나간다’고 할 정도였죠. 근데 울진은 원전 유치 후 한수원 지원금에 세수 확보 등으로 지자체 살림도 영덕보다 나아졌고, 울진 인구(2025년 기준 4만5896명)도 영덕(3만2698명)보다 많아요.”
그는 “대형 원전이 서생면으로 가도록 해서는 안된다”고도 했다. 울산 울주군 서생면은 새울원전(1·2호기 가동 중, 3호기 올해 6월 상용 발전 시작, 4호기 건설 중)이 들어선 곳으로, 대형 원전 2기 유치를 희망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SMR 1기 유치전에 뛰어든 지역은 부산 기장군과 경주시로, 모두 원전이 들어선 지역이다. 원전을 대안으로 선택한 지역은, 계속 원전에 기대어 살아간다.
“설문조사로 원전 유치?”
영덕에서도 원전에 반대하는 이들이 있다. 10년 전에도 천지원전 유치가 주민투표 없이 진행됐다며 원전 반대 측 주민들이 천지원전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한 적이 있었다. 2015년 11월 11~12일 이틀간 진행된 투표에서 주민 1만1209명(전체 유권자의 32.5%)이 참여해 그중 91.7%인 1만274명이 원전 반대에 표를 던졌다. 당시 주민등록인구 4만명 수준이었던 영덕에서 성인 4명 중 1명은 원전을 원치 않았다는 얘기다. 다만 정부는 투표 참여자가 주민투표법상 유효요건(전체 유권자의 33.3%)에 미치지 못했다며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제 영덕의 인구는 3만명대로 줄었고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주민들이 많지만, 여전히 원전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상당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주민 김현상씨(54)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창수면 인량리에서 유기농 복숭아·사과·버섯 농사를 짓는데, 서울의 대형 백화점 등에 납품한다고 했다. “영덕 농산물은 원전이 있는 울진 농산물보다 ‘청정’이라는 이미지도 있고 값도 더 쳐줘요. 반응이 좋으니까 저도 대형 백화점에 납품할 수 있었던 거죠. 그런데 원전이 지어지면 이곳의 농산물, 특히 유기 농산물은 그에 맞는 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요?”
이전락씨(68)는 포항에 살다가 은퇴 후 영덕으로 귀촌했다. 영덕군 귀농귀촌연합회에서 도시민유치사업단장을 맡고 있다. 이씨는 “원전이라니 억장이 무너진다. 머물고 싶은 영덕, 더 오래 행복하게 머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군수가 해야 할 몫 아닌가”라며 이렇게 말했다. “주민들이 대게 잡고 버섯 키우고 벌 키우고 하면서 살 수 있도록 만들어야죠. 도시의 사람들이 영덕 와서 파도도 타게 하고, 메타세쿼이아 숲도 걷게 하고, 사과도 따게 하고. 이런 정책을 마련해서 소멸이 안 되게 해야지요. 이런 천혜의 자원을 없앨 건가요? 원전 유치해서 그 떡고물 몇 번 먹고 가슴 졸이며 살게 할 건가요?”
축산면 차유리 앞바다에서 대게를 잡는 김기원 선장(66)은 “영덕에 원전을 유치하자, 말자 그 얘기만 하다가 그동안 허송세월만 보냈다. 원전정책이 계속 오락가락하는데, 이제는 찬성이든 반대든 신경 쓰고 싶지 않다”며 이렇게 말했다. “원전을 유치할지, 말지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영덕 주민들 어떻게 잘살게 할 것인가, 어민들이 어떻게 고기 잡고 먹고 살게 할 것인가 그 얘기를 해야지요. 대게는 줄고 어업 규제는 늘고, 어민들은 생계 걱정을 하는데 정치인들이나 언론이나 그런 얘기는 하나도 하지 않죠. 적어도 원전 들어서면 온배수 문제로 어민들 피해가 있을 텐데 뭔 대책이 있는지 아무도 얘기하지 않아요.”
한국수력원자력은 오는 3월 30일까지 각 지자체를 대상으로 원전 유치 신청서를 받는다. 이후 신청부지 조사 및 평가를 거쳐 6월 말~7월 초 후보부지 선정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빠듯한 일정이다. 이 일정에 맞춰 영덕군은 지난 2월 9일부터 13일까지 주민 1400명을 대상으로 원전 유치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를 벌였고 원전 유치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약 86%로 나타났다. 이들은 찬성 이유로 ‘지역경제 활성화(58.5%)’ , ‘인구 유입 효과(56.6%)’ 등을 꼽았다. 다만, 영덕읍에서 만난 한 주민은 “이 중차대한 문제를 주민 대상 설명회나 설득 작업도 없이 고작 1400명한테 전화 걸어 설문으로 결정하려고 하는 게 말이 되냐?”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기후에너지환경부 등을 대상으로 한 업무보고에서 “원전정책이 정치 의제처럼 돼버렸다. 효율성이나 타당성에 대해 진지한 토론이 이뤄지지 않고 편 가르기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주간경향이 취재한 영덕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천지원전 사업이 추진됐던 과거에도, 원전 후보지 선정이 이뤄지는 지금도, 갈등의 출발점은 늘 중앙정부의 결정이었다. 영덕은 그렇게 지난 세월을 견뎌왔다.
기술과 자본을 가진 자들은 땅을 개발을 위한 ‘부지’로만 여기지만, 시인은 땅을 삶의 터전이자 자연의 순환적 질서가 펼쳐지는 ‘대지’로 여긴다. “내리는 눈이 겨울날의 여우가 되고 또한 봄날의 오리나무가 되는 한 장소”를 잃어버리면 ‘대지’는 ‘폐허’로 변한다. 굵은 글씨로 강조된 ‘장소’라는 말에 주목해보자. “이 장소는 우리들의 빵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문장을 보면, 그가 지키려 했던 것은 물리적 장소뿐 아니라 그곳에 흐르는 지각 불가능한 생명의 기운까지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장소의 생태계는 한번 파괴되면 회복할 수 없고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핵발전소를 짓기로 한 정부 발표를 보며, 르네 샤르의 이 선언적 아포리즘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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